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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01. 2020

내 곁에 있는 사람

너의 생애를 압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


  네가 새 향수를 뿌리는 날이 좋았다. 너에게 축하해줄 일이 있을 때면 일부러 향수를 선물로 고르곤 했다. 그 향이 좋아서가 아니라 향수를 뿌리는 네가 좋았다. 너는 거의 매일 향수를 뿌렸지만 새 향수를 뿌리거나 몇 가지의 향수를 섞어서 뿌리는 날이면 내게 향이 어떤지 묻곤 했다.

  맡아보라며 내게 손목을 내밀거나, 맡아보겠다며 네 손목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탑노트니 미들노트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파인애플향이니 플로럴향이니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너의 체취와 섞인 그 향은 처음과는 달랐고 내가 좋았던 건 네게 나는 향기가 아니라 네 손의 온도였다. 단 한 번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너의 손, 식사를 할 때면 오른손을, 필기를 할 때면 왼손을 쓰던 너의 손, 주말이면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너의 손, 단 한 번 나를 꼭 감싸안고 망설이던 너의 손.


  한 가지 향수를 오래 뿌려온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 지하철에서, 공항에서 그 향기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다시 본다. 내가 아는 얼굴인지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너의 향기를 네가 아닌 사람에게서 맡아본 일도, 뒤를 돌아본 일도 없다. 너는 오롯이 너로 남았다.

  나는 가능하면 향이 없는 샴푸와 바디워시를 골랐다. 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향수를 쓰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가능하면 향기가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네가 어제 불쑥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나는 사실 짐작했다. 너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너는 내게 여지를 주지 않았지만,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마 너보다 내가 네 사랑의 크기를 더 선명하게 보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오래 지켜봐온 사람은 알 수 있다. 너의 생애를 압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은 너에게 더는 내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과 닿아있었다. 감정은 불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슬퍼지곤 한다.

   "당분간 외국에 있을 거야. 그래서 보러왔어."

  여름으로 간다는 너에게서 여름비 냄새가 났다. 어떤 향수를 뿌린 걸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구름 그림자,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아득하게 퍼지는 여름 기운 같은 것이 떠오른다.

  "언제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어. 여름이 지나고 오지 않을까."

  네가 없는 계절을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을이나 겨울에 돌아올게."

  네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눈물이 났다.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 네 곁에 있던 날이면 너의 향기가 내게 고스란히 남아서 밤새 그리워 뒤척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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