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니 생각이고
혼자서 외국에서 사는 것과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건 꽤 다른 느낌이다.
스위스에서, 그것도 작은 도시(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이나 엄연히 도시이긴 하다)에서, 스위스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뭔가 완전히 아웃사이더도 인사이더도 아닌 입장에서 가끔 내가 잘 해내고 있는가? 라는 자책섞인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그 수렁에서 혼자 쏘옥~하고 나오기는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 읽은 육아 블로그에서 그러더라.
미안해 하는 엄마보단 게으른 엄마가 낫다고. 말이 '게으른'이지 사실은 느긋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육아 초반엔 느긋했던 것 같은데 어쩐지 점점 초조함이 몰려왔다. 이런 긴장 상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아이에게 좋은 말로 할 것도 언성이 높아지고, 누가 아프지도 않고 아무 별 탈이 없는 일상에 괜히 스트레스 강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짜증의 부스러기는 튀김을 튀길 때 튀는 기름처럼 가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튄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좀 그런 상태였다. 나는 학창시절에 영어를 배우고, 성인이 되어 어학연수를 갔고 천천히 그때까지 배운 걸 회화로 옮기며 영어를 배웠다. 독일어는 결혼하면서부터 살기 시작한 스위스에서 쓰는 언어니까 자연스레 배웠다. 그러다보니 어영부영 외국어를 하며 살지만 성인이 되어서 하는 것이다보니,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거랄까.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다개국어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나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몰랐다.
정말 어쩌면 좋을 줄 모르겠단 생각을 많이 했고, 때론 내 생각과 경험과는 상반되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저건 아니지...싶다가도, 나도 지금 이게 잘 되어가는지 사실 모르기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 요즘에, 장얼의 노래가 확 꽂혀 들어왔다. 그건 니 생각이고-
맞다. 이 곡은 그렇게 친절한 인상의 곡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의미는 따뜻하달까. 어쩐지 차가운 인상을 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고, 힘 닿으면 남을 도와주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해 주는 말 같다. 야, 너 힘드냐? 그럼 지금 내가 하는 말 한 번 들어봐. 이런 느낌으로.
장기하 특유의 말하는 듯이 노래하는 스타일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가사는,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라고 꽤 빠르게 치고 지나가는 구절이다. 워낙 듣기에 취약한 타입이라(외국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조금 사오정이다. 그래서 읽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 니가 나로 살아봤냐인줄 알았다.
조금은 다그치듯이 그러나 완전 조리있게 나, 너, 걔네들 입장에서 다 제각각 자기 입장밖에 모른다는 걸 대답도 하기전에 빠르게 읊조리듯 묻는다. 그러고는 어?어? 하고 다그친다. 대답은 응...그러게. 그러네? 정도로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은 내 입장에선 마치 상담이라도 해주는 듯한 이 노래가 더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른다.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은 해체라고 하던데, 나에게는 상당히 진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얼마나 들어댔는지 첫째 닉이 자꾸 웃으면서 "그건 니 생각이고~"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