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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 Oct 11. 2018

우리집에 놀러와

작은 도시와 더 작은 마을들

훌륭한 가을날씨다. 단풍을 보면 문득 한국의 가을산이 그립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중의 하나니까.

나의 스위스 고향 브룩은 인구가 11,000명에 불과하지만 행정구역상 시(市)에 속한다. 많지 않은 인구수에 걸맞게 중심가도 크지 않지만 중세시대부터 꽤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다. 그건 바로 브룩(Brugg; 스위스 독일어로 '다리'라는 뜻이다)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을 건너는 다리 역할이었다.


베른이나 인터라켄에서 보면 널찍하게 흐르는 아레 강이 브룩에서는 골짜기 안을 파고들며 폭이 현저하게 좁아진다. 그 대신 물살을 굉장히 세서 곳곳에서 소용돌이도 볼 수 있어서 여름철에는 급류타기나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옛날에는 그 좁은 폭이 취리히에서 바젤로 갈때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어릴때부터 웅장한 고성이나 다리, 성벽같은 것을 보면 엄마가 애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시던 게 생각이 난다.


"아이구..저걸 짓는다고 얼마나 많은 엄한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사진 중앙에 골짜기가 좁아진 부분에 놓인 바로 저 다리가 브룩의 이름을 지은 셈이다. 출처: aarelauf.ch


2000년 전부터 그 자리에는 어떤 때에는 나무로, 돌로 다리가 있어왔으니 엄마의 그 이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분명 의미있는 것일테다. 지금 있는 다리는 1925년도에 기존에 돌로 지어진 다리를 무너뜨리고 새로, 그러나 모양은 똑같이 그대로 만들어졌다.


낮시간에는 보통 사람이 별로 없다. 주거지역이고 지금 가을방학이라 더한 것 같다.
길가에 호두나무. 떨어진 호두를 주워먹는 재미가 있다.


그런 역사는 역사이고, 브룩은 여전히 작은 도시로 남았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하거나 일하러 좀 더 큰 도시로 나가는... 그래서 출퇴근 시간 기차역이 혼잡한 그런 동네 말이다. 그리고 그 역 근처에는 중앙 버스 정거장같은게 있는데 여기로부터 브룩 주변에 더 작은 마을들로 이동할 수 있다.


그래봐야 버스타고 15분 정도면 닿는 마을들이 많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도 꽤 많다. 대부분 아이들이 있는 나와 내 지인들은 서로를 각자의 집에 초대해서 아이들은 끼리끼리 놀게하고 우린 잡담을 좀 하면 좋겠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같이 놀아주거나 애들이 놀다가 다투면 관계 조정하기, 집주인은 간식 대접하기, 손님은 애들이 어질어놓은 것 치우기 등등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 건강하자, 라는 덕담과 언젠가는 애들없이 만나자,가 우리 사이엔 흔한 인사다.


오늘은 닉이 정말 좋아하는 동갑내기 친구 율리안네에 가는 날! 날씨도 어쩜 이리 화창한가. 버스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더욱 들떴다. 나도 친구보러가니 반갑고 좋으나, 동시에 세 사내아이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일 생각을 하니 늘 그렇듯 조금 초조해졌다.


역시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 녀석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 대화하는 방법따윈 모르는 것처럼, 분명히 화가 나지 않았는데 고음 사자후로 대화 및 자기주장을 펼쳤다.


나는 축구를 하고 싶은데 넌 왜 하기 싫은거냐. 으아악. 우린 노아랑 놀아주는 건데(말하면서 동시에 플라스틱 볼링핀으로 툭툭 때리는 중) 왜 못 놀아주게 해요. 나 잡아봐라~우히힛. 잠깐 거긴 자동차가 지나가니까 멈춰!! 시소 탈때 너무 빨리하지 마~나 무섭단 말야!!! 엥~닉은 초콜렛 많이 주고 난 안 줬어(똑같이 줬다)! 난 집에 안갈래, 여기서 잘거야~(누구맘대로?) 엄마 나 배고파, 흑흑....


하루종일 들은 근거는 없으나 강한 자기주장, 때로는 격한 슬픔-대부분 장난감과 간식에서 비롯된다-갑자기 솟구친 친구와 엄마에 대한 사랑 등 감정의 너울속에서 엄마들은 겨우겨우 정신을 다잡는다.


헤어질 무렵 지는 석양을 등 뒤에 업고 하필 쌍용 자동차 판매점 앞에서 우린 서로를 바라 보았다. 너나 나나 우리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니? 그러나 보람찬 하루였다. 피곤해서 반쯤 눈이 감긴 아이들 얼굴을 보니 더욱 더. 역시 애들은 신나게 놀게 해주고 나면 가장 착해진다. 에너지 발산 끝.


아이들을 다투게 한 장난감 그리고 평화를 가져온 놀이터.
버스 정류장의 클럽 전단들. 시골에서도 젊은 친구들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근처 도시 바덴에서 하는 행사들이 많았다.
정류장 건너편에 작은 농장. 난 이런집에서 살고 싶었다. 로망은 로망일뿐. 오래된 집은 운치만큼 일감도 많다.


브룩에 도착해 집에 가는 길을 벌써 밤이었다. 애들 저녁을 간단히 사 먹이고 싶었지만 가게들이 역시나 다 문을 닫아 버렸으므로.. 그래, 이 사람들도 집에 가서 따순 밥이든 빵이든 먹어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깜냥도 이젠 있으니까, 나름 씩씩하게 집에 왔다.


그나마 가로등이 있어서 괜찮다.


등 뒤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시끄럽게 오길래 어디 술이라도 마시러 가나 했더니, 아까 본 호두나무를 신나게 털고 있었다. 아직 짧아진 해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아직도 밖에서 놀고, 어떤 아이들의 부모들은 피곤한 듯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아이들 곁을 지키며 잠시 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채근해 집에 가는 길에 바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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