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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쓰레기 없애기’ 그 너머를 향해

월간 옥이네 2022년 2월호(VOL.56) 여는 글

며칠 전 아침의 일입니다. 외출 준비 중 서랍장을 열었다가 분화구에서 솟아오르듯 쏟아진 양말들에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습니다. 한 칸 가득 꾹꾹 눌러 담아둔 것이 서랍을 엶과 동시에 튀어 오른 것인데, 덕분에 귀한 아침 시간을 양말 정리에 허비해버렸네요.


차곡차곡 다시 서랍장에 나누어 담으며 양말을 기워 신던 장면이 어렴풋하게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내준 숙제라서, 또 물건을 아끼는 마음을 배우라는 부모님의 뜻이라서 간신히 따랐던 기억인데요. 새 양말을 사면 되는 것을 왜 굳이 깁는 수고를 해야 하냐고 툴툴대던 제 모습도 함께 였습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양말을 기워 신는 것은커녕 구멍 난 양말을 보기도 어렵죠. 그 정도로 오래 신지도 않고, 그 전에 새로 산 양말로 서랍장을 채우니 말입니다.


며칠 전 서랍장 사태(!)는 옥이네 이번 특집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능한 사지 않고, 있는 것을 활용하고, 버리기 전에 쓸모를 다시 고민하고. 요즘 유행하는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애기 또는 줄이기)’라는 말이 별나게 느껴질 정도로, 한 세대 이전에는 생활 속에 스며있던 것입니다. 이를 제로웨이스트 유행 전에는 ‘구질구질’하다고 여기는 시선이 없지 않았죠. 사실 지금의 우리가 당연하다 여겨온 게 전혀 당연하지 않았을 뿐인데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일회용품을 쓰고 물건을 버리는 삶이 끝나지 않는 건, 여전히 소비주의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가 만들어 온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을 우리 삶의 편리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망쳐왔는지요.


옥이네 이번 특집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당장 우리가 바꿔야 할 인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이것이 ‘재활용 또는 새활용하면 괜찮다’는 오해를 가져오진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 재활용이나 새활용은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재활용 되는 폐기물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소비’에 찌든 마음에 죄책감을 덜어줄 뿐이죠. 또한,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인 ‘규제 불가능한 산업’의 책임을 지워버릴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소비문화를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개인의 실천에만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실천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직접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풀뿌리 운동이 ‘제로 웨이스트’라는 유행과 잘 결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일, 물건을 함부로 사고 버리는 일이 단순히 쓰레기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아주 긴밀하게 엮여있고 그로 인한 결과로 우리 모두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도 말입니다.


다시 한 세대 이전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원을 아꼈던 것은 단순히 ‘내’ 물건이라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것이 자원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고, 그것이 내가 속한 공동체, 곧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일임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이겠죠. 지금 세대보다 어려운 시절을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어른들의 유전자에는 그런 정신이 기본으로 장착돼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를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리를 보고 있자면 말이죠.


그때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지나야 할 앞으로의 세대를 떠올려봅시다. 새해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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