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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쉽게 먹고 쉽게 말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

월간 옥이네 2022년 4월호(VOL.58) 여는 글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롭고 특이한 것을 찾아나서는 맛 기행도 입을 즐겁게 하지만, 기억 속의 ‘그 맛’을 떠올리며 음미하는 것도 음식을 즐기는 방법이지요. 오래 전 한 TV 광고의 “음, 이 맛이야”하는 카피를 떠올릴 때 ‘고향의 맛’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함께 연상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감각에는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과 날씨, 풍경, 그날의 분위기까지 모두 포함되는 것일 지도요.


봄이 오면 생각나는 옥천의 음식 중 하나가 ‘생선국수’입니다. 청산면 주민들이 힘을 모아 개최한 생선국수 축제가 벚꽃과 함께 보청천 주변을 가득 채운 때가 있었는데요. 코로나19로 생선국수의 향연을 만날 수 없게 된 지금, 옥이네는 청산의 생선국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청산면을 흐르는 보청천, 그곳에 얽힌 청산 사람들의 추억과 생선국수라는 향토음식이 가진 의미를, ‘맛’을 넘어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전화 한 통, 배달앱 몇 번 누르는 것으로 손쉽게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대에 향토음식은 더욱 멀게 느껴집니다. 굳이 식당까지 찾아가야 먹을 수 있는데다 재료도 낯설고요. 저 역시 ‘향토음식’이라는 말 자체가 어딘지 따분하게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음식에 담긴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기 때문일까요. 다른 지역에 가서도 그곳의 향토음식은 무엇인지, 오래된 간판 아래 낯설지만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음식을 꼭 찾아보게 됩니다. 음식을 통해 삶을 알아간다는 것이 마냥 재미있고요. 옥이네 지면을 통해서도 생선국수에 깃든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밥상에 담긴 소박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얼마나 놓치고 사는가도 함께 돌아봤습니다. 언젠가, 마을 할머니들의 요리법을 꼭 소개해보고 싶었는데요.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조만간은 시작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또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진한 생선국수의 국물 맛을 떠올리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러나 마냥 입맛만 다실 수는 없는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우리 이웃 중 하나, 대청호 어민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미 한참이나 진행된 환경 파괴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떠받쳐온, 그러나 가리어졌던 돌봄 노동자와 잃어버린 우리 농토의 가치도 마음을 무겁게 하지요.


한국계 미국인이 쓴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4월호 여는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엄마가 이제 없는데 내가 한국인일 수 있을까?’


동아시아 식료품점인 H마트(한아름마트)에서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새긴다는 내용인데요. 이번 호 옥이네를 만들면서, 또 꿀벌 60억여 마리가 사라졌다는 보도와 한 정당 대표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혐오 발언-장애인 단체의 시위는 그저 ‘지하철을 타는 것’에 불과한 데도 말입니다-을 보면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땅이든, 호수든,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가 없는데 우리가 ‘우리’일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쉽게 먹고 쉽게 말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상처 입히고 파괴해왔는지 떠올려보는 4월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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