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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우리 지금, 평안한가요?

월간 옥이네 2022년 5월호(VOL.59) 여는 글

5월 가정의 달입니다. 댁내 두루 평안하신지요.


어릴 적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은 으레 이런 투로 시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도 두루 평안하신지요. 새삼스레 안부를 전해봅니다.


5월, 하면 누구나 ‘어린이’를 떠올리지요. 어린이처럼 파릇한 이파리가 손짓하는 이 계절에 ‘어린이날’을 만든 것은 시기적으로도 무척 적절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는 해라는군요. 5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어린이를 주제로 한 각종 보도가 이어지는데, 이 역시 언론이 좋아할 만한, 아주 시기적절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어린이 이동권, 학습권, 놀이권 등을 비롯해 어린이 빈곤율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 발생률 등 다양한 이야기가 우리 언론의 서두를 채우겠지요. 어느 때보다 풍성한 어린이 소식을 주요 매체에서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린이 문제가 특정 시기에만 집중해 발생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럴 때에 유독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말이죠. 흔히 ‘시의성’이라는 말로 뉴스의 이런 속성을 설명하곤 하지만, 그런 단어 뒤에 숨어 쉽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도 해봅니다. 물론, 지금 우리에겐 당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약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요. 그렇다 보니 이런 보도 행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고 있지만, 옥이네 이번 호도 결국 ‘어린이’입니다. 어린이가 안전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이 역시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그 층위가 무척 다양한 문제입니다. 우선은 어린이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면도로는 물론 좁은 골목까지 침투한 차량과 울퉁불퉁한 인도, 마음 놓고 뛰어다니기 어려운 마을 안길 등 오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은 학교, 학원, 집 정도 뿐인 듯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골목길에서 우르르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보기가 정말 어렵지요. 이번 호 옥이네가 명확한 방법론이나 해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서 이를 함께 돌아볼 계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어린이가 안전해야 노인도, 장애인도, 여성도, 길고양이도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요.


4월 중순에는 초여름처럼 더위가 이어지더니 4월 말이 되니 비와 함께 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반소매 티셔츠를 입다가 두꺼운 외투를 꺼내며, “사계절이 있는 한반도에서 기후위기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던 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추울 땐 겨울옷을, 더울 땐 여름옷을 꺼내 입으면 되니 이상기후에 적응이 어렵지 않다고요. 하지만 이런 것이 우리 삶에 익숙해져서도 안 되겠지요. 정말 우리가 평안한 게 맞는지 질문이 필요한 때인 듯합니다. 그런 질문이 없다면 사라진 꿀벌과 광장에서 지워진 수많은 존재의 위기가 곧 나에게 닥쳐올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이토록 푸르고 안온한 계절이야말로 질문을 던지기에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지금, 두루 평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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