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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Oct 31. 2019

옛 홍콩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섬

펭자우 (坪洲, Peng Chau)

    "이번 주말에는 어디에 가볼까?"

    홍콩에 온 이후, 주말 중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남은 하루는 비비안과 함께 외출 혹은 여행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홍콩은 영토가 넓지 않고 버스, 지하철, 배 등의 교통수단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어디든지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 우리는 "외출" 혹은 "여행"을 할 때 거주지인 마온산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홍콩에 산재되어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몽콕이나 침사추이 등 구룡반도의 중심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기도 한다. 어느 장소로 향할 때 명확한 기준에 의해 "외출"이냐 "여행"이냐로 나누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는데, 현실의 연장선 상에서 어느 장소에 다녀오는 건 "외출",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을 보내고자 할 때는 "여행"이 된다. 뒷산에 올라갔다 오는 게 여행이 될 수도 있고, 홍콩섬 끝자락 해수욕장에 다녀오는 게 외출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시간과 장소보다는 그 날의 일정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상태가 외출이냐 여행이냐를 결정한다. 

    "이번 주에는 펭자우 섬 (坪洲, Peng Chau)에 다녀오는 게 어때?" 내가 비비안에게 물었다.

    "그래 좋아."

    비비안은 주중에 일로 바빴고, 주말엔 어디론가 떠나 평일 내내 시달리던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따라서 이번 펭자우 일정은 외출이 아닌 여행이 될 것이다. 비비안이 주말만큼은 업무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장소보다는 한적한 장소를 떠올리게 되었고, 육지보다는 섬으로 가는 것이 무언가에서 떨어진다는 심리적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섬 여행을 제안하게 되었다. 장소가 결정되면 그곳에서 방문할 식당과 관광명소 한 두 곳 정도만 검색한 뒤 집을 나선다. 많은 정보를 알아보고 세부적으로 계획을 짤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면 여행 자체가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최대한 간단하게 계획한다.

홍콩섬 센트럴에서 청자우 섬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배

    우리는 거리를 거닐며 섬의 정취를 즐기고, 홍콩식 식당을 방문하여 간식을 먹고 오기로 했다. 펭자우 섬은 란타우 섬의 동남쪽에 있으며, U자 모양을 오른쪽으로 뉘인 모양의 작은 섬이다. 안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는 작은 해수욕장도 있으며,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거주 인구는 많지 않다. 이 작은 섬에 가기 위해서는 홍콩섬의 중심지인 센트럴에 있는 여객 터미널에서 배를 타야만 한다. 펭자우로 가는 배는 20~30분마다 있고, 운임은 3,000원 정도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비안에게 절대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아름다운 섬 풍경만 즐기고 오겠다고. 

    작은 섬이라 그런지 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2~300석 정도 되는 배에는 50명 정도의 승객만 탑승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일로 작은 섬에 방문하는 걸까? 우리처럼 여행? 아니면 친구를 만나러? 아니면, 그 작고 귀여운 섬에 거주하는 사람인가? 작은 섬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조용하고 정적인 섬일 테니, 매일매일 같은 기분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일 날씨가 바뀌고, 계절도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를 테니 다른 기분일까? 여기서 시내로 나가려면 번거롭긴 하겠네. 매일 배를 타고 나가야 하니까. 그래도 30분 정도면 센트럴에 도착할 수 있으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겠네. 센트럴에 직장이 있으면 펭자우에 사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다. 출퇴근할 때 선상에서 보는 바다 경치도 운치가 있을 거고. 밤에는 좀 심심할 수도 있겠다. 요동치는 바다의 파도 때문에 발생한 멀미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는 펭자우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자춤을 공연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반겼다.

    펭자우는 생각보다 더 작은 섬이었지만, 이 점은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이 섬에는 자동차가 법적으로 다닐 수 없기 때문에, 도로에는 자동차가 하나도 없었고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도로는 좁았고 울퉁불퉁했으며 건물은 전부 낮아 5층을 넘는 건물이 없었다. 펭자우 섬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가죽 및 도기 생산을 담당했던 섬이다. 산업 규모가 꽤 컸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이 살고 있었으며 섬도 북적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1970년 대 이후로 공장들은 폐쇄되었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섬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한적한 섬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 시절 이후 이렇다 할 산업을 육성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거주지로서의 작은 섬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거리에 차가 없어서 과거 여행을 하는 것 같았던 펭자우 섬.

    섬의 시계는 공장이 작은 섬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다져지지 않은 좁은 골목과 그 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야채가게, 정육점, 식당, 세탁소, 문구점 그리고 가게 안의 홍콩의 예전 스타일 인테리어 등은 우리와 과거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임이 분명했다. 이처럼 섬의 곳곳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섬만의 고유한 향기를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었는데, 특히 이곳의 찬란한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공장 터나 공장 시설물들은 오래된 앨범 사이에 껴있는 빛바랜 사진처럼 자신들의 과거를 희미하게나마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 도로변에 있는 몇몇 허름한 가게는 이 곳이 가게인지, 집인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인지 헷갈리게 하는 어두운 조명과 낡은 문을 갖고 있었는데 안에는 실제 펭자우 섬에서 기계가 아닌 도공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그릇, 찻잔, 도자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기 위에는 중국 색이 강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그림들도 도공들이 직접 그려 넣은 것이었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의 그릇이라고 하더라도 그림이 조금씩 달랐다.

거리 곳곳에 있던 옛날식 패턴을 갖고 있는 철문

    섬을 걷다가 배가 좀 고파져, 특별한 음료를 팔고 있다는 차찬텡 (茶餐廳; 홍콩 스타일 음식점)에 방문했다. 차찬텡 역시 예전 홍콩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체크무늬의 바닥 타일, 카와이라고 부르는 기차 칸처럼 생긴 좌석, 원형 테이블, 자연스러운 합석 문화, 메모지에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 주방에 가득 쌓여있는 캔 우유 등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옛날 홍콩으로의 여행을 선사해 주었다. 밀크티에 팥빙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설탕에 절인 팥 얼음을 함께 넣은 음료가 이 곳에서 파는 특별한 음료였다. 밀크티에 팥을 넣어 먹지는 않는데, 이 곳에는 특이하게 밀크티에 설탕에 절인 팥을 넣어주어 밀크티에서 팥 향이 강하게 났다. 함께 시킨 레몬 꿀물과 소고기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홍콩 스타일 토스트도 맛이 좋았다. 

펭자우 섬에 있는 예전 홍콩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차찬텡

    식사를 하고 나오니 이미 날은 저물어 섬 곳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바다 위에서 빛나고 있는 노란 네온사인 불빛은 조용한 섬의 정취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근처 마트에서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 바다를 향해 있는 항구쪽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살면 좋을 것 같다. 그치?" 내가 비비안에게 물었다.

"응 맞아. 조용하고 좋네. 그런데 조금 심심할 것 같기도 해." 비비안이 대답했다.

"맞아. 사람도 워낙 적고 조용해서 할 거는 많이 없겠다." 

"그렇지. 그래도 센트럴 쪽에 직장이 있으면, 배가 다니니까 출퇴근하긴 편할 것 같아." 

나는 바다 너머 보이는 펭자우섬의 다른 지역 바닷가에 있는 2층짜리 집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둘이 살면 참 좋겠네.'

어느 순간부터 비비안과 이렇게 조용한 장소에서 같이 살면 남은 인생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펭자우섬 곳곳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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