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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Sep 11. 2020

밀크티를 좋아하세요?

홍콩식 밀크티

    홍콩에서 1년 동안 거주하면서 거의 매일 밀크티를 마신 홍콩 김서방은 한국에 돌아가는 게 결정되었을 때, 한국에서 더 이상 이 마성의 음료를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진한 홍차 베이스에, 우유를 넣고, 그날 기분에 맞춰 설탕의 양을 조절하여 마시는 밀크티 한잔의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홍콩을 떠나기 전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각종 레시피를 연구한 끝에, 홍콩식 밀크티를 내리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필요한 재료를 직접 구매하여 한국에 가져오게 되었다! 찻잎만 거의 8kg을 구매하였으니 앞으로 최소 일 년 동안은 한국에서도 걱정 없이 밀크티를 마실 수 있게 됐다. 

홍콩에서 직접 공수한 밀크티 세트

    홍콩식 밀크티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차를 물과 함께 끓여 보통 차보다 두세배 이상 진하게 우려낸다. 둘째, 차의 입자를 가늘게 하여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기 위해 스타킹을 이용한다. 셋째, 진하게 우린 차와 농도를 맞추기 위해 일반 우유에서 수분을 30% 이상 날린 무가당 연유 (Evaporated Milk)를 사용한다.


첫 번째: 차담(茶膽)

    홍콩식 밀크티에 들어가는 홍차 베이스는 그냥은 써서 못 마실 정도로 진하다. 이는 뜨거운 물에 찻잎을 내려 마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차를 물에 넣고 15분 이상 푹 끓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홍콩 사람들은 이 홍차 베이스를 "차담(茶膽)"이라고 부른다. 홍콩 티하우스의 성패는 이 차담에서 갈린다. 차담을 얼마나 잘 우려내는지가 밀크티 맛의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각 티하우스마다 차담 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차담 내리는 방식은 가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여러 가게에서 파는 밀크티를 마시며 그 맛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 홍콩에 가서 밀크티를 마셨을 때는 맛이 다 비슷한 것 같았지만, 마시다 보니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가게는 물 탄 것처럼 밍밍했던 반면, 어떤 가게는 진한 차 맛이 잘 느껴지면서 우유와의 조화도 좋았다.

차담(茶膽)을 우려내는 모습. 엄청 진하다!

두 번째: 스타킹    

    두 번째 특징은 차를 우려낼 때 스타킹을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스타킹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스타킹과 모양이 비슷한 긴 망을 이용한다. 그래서 홍콩식 밀크티는 종종 "스타킹 밀크티"로 불리기도 한다. 차를 물과 함께 푹 끓인 다음 스타킹을 이용하여 찻잎을 걸러내며 입자를 부드럽게 만든다. 두 개의 팟을 왔다 갔다 하며 차를 우려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홍콩섬에 있는 식당 란펑윤의 스타킹 밀크티 제조 과정은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도로 밖에서 주방 창문 사이로 점원들이 스타킹을 이용해 분주하게 차를 우려내는 모습이 보이는데, 빌딩 숲 사이에서 보는 그 풍경은 정말 매력적이다.

홍콩 스타일 밀크티로 유명한 홍콩섬의 식당 란펑윤 (蘭芳園)

세 번째: 무가당 연유 (Evaporated Milk)

    마지막 특징은 일반 우유가 아닌 무가당 연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차담이 워낙 진하기 때문에 수분 비율이 높은 일반 우유를 넣어서는 농도를 맞출 수가 없다. 따라서 수분을 30%이상 날린 무가당 연유를 이용하여 농도를 맞춘다. 무가당 연유 제품이 여러 개 있지만, 그중에서도 홍콩 차찬텡(홍콩식 음식과 음료를 파는 식당)에서는 대부분 "Black&White" 제품을 사용한다. 몇몇 식당에서는 "Carnation" 제품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드물다.

홍콩 차찬텡에 진열된 "Black&White" 제품 (좌), 차찬텡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Black&White" 컵 (우)

    무가당 연유는 홍콩에서 한 캔에 약 1,000원 정도의 매우 저렴한 가격에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단 한 군데도 파는 곳이 없어 애를 먹었다. 해외 주문을 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배송비가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컸고, 아무래도 통조림보다는 직접 만드는 게 더 좋을 듯하여 우유를 직접 끓여 무가당 연유를 만들기로 했다. 우유를 냄비에 넣고 15분 정도 끓이니 위에 하얀 막이 올라오면서 수분이 약 1/3 정도 날아간 걸 볼 수 있었다. 수분을 날리니 기존 우유보다 훨씬 맛이 진하고 담백했다. 세 가지 찻잎을 끓여 만든 차 베이스를 스타킹에 걸러 낸 뒤 또 끓이는 과정을 반복하여 차담을 만들어 냈다. 차담을 무가당 연유와 섞으니, 맛이 홍콩에서 먹는 밀크티와 비슷했다! 통조림 제품이 아닌 직접 만든 무가당 연유를 넣어서 그런지 캔 제품을 넣은 것 보다 식감이 더 부드러웠다. 

    차담만 있으면 레몬티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레몬티 역시 밀크티와 마찬가지로 홍차로 우려낸 차담을 사용해 만든다. 차담에 얼음과 물을 일정 비율로 섞고, 레몬 슬라이스를 3개 (홍콩 국룰인 것 같았다) 올리면 된다. 마실 때 꼭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차에 올려진 레몬을 건들지 않고 그냥 먹으면 레몬 맛을 잘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꼭 빨대나 숟가락으로 푹푹 눌러서 즙을 내 음료와 섞이도록 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몬을 곁들이는 이유는 홍차의 쓴맛과 텁텁한 맛을 레몬의 신맛이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고, 음료의 맛을 좀 더 다채롭기 하기 위함이다.

한국에 돌아와 직접 만들기 시작한 밀크티와 레몬티

    홍콩 김서방은 한국에 돌아와 밀크티를 직접 만드니 홍콩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나기도 하고, 즐겨 방문했던 차찬텡이 그리워지며 잠시 홍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밀크티를 한국에서 즐길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놀러 가서 밀크티와 레몬티를 만들고 손님들에게도 맛보라고 내드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홍콩 김서방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밀크티를 예찬해 왔는데, 이번 기회에 홍콩에서 돌아왔다는 생존신고도 할 겸, 친구들에게 밀크티를 맛보게 해보고 싶었다. 밀크티를 홍콩식 프렌치토스트와 함께 제공하면 상당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홍콩 밀크티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계속)

친구 가게 "TUC"(좌), 손님이 찍어주신 사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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