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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윤 Aug 12. 2022

꿈보다 높은 현실의 벽

차선책이면 뭐 어때요? 저도 호텔에서 일할 거예요.


소중했던 나의 첫 꿈이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 사라졌다.


열정이 가득했던 처음이어서인지 눈을 뜨면 아른거리는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든 컨트롤하고 싶어 일단 다른 일을 하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여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유일하게 지원 가능한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에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갑작스레 생긴 대표의 공석으로 50년의 기간 동안 잘 유지되었던 회사가 가장 불안정한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하필 이 시점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금방 회복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다음 공채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전례 없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결국 19년도 2월을 끝으로 단 한 번의 채용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행복했던 나의 첫 꿈은 완벽히 부서져 버렸다.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다른 곳에 지원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자존심은 있었던 것인지 아무 취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선책이어도 내가 선택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장래 희망이 뭐야?"

학창 시절 지겹도록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는데도 정작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꿈을 찾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싶었다. 아니, 남들 다 취업하는데 왜 나는 지금에서야 꿈을 찾고 있는 걸까 싶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고민들이 모여 '내 인생의 열정'을 만들어 낸 첫 시작이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마음을 굳게 잡고 앉아 열어본 채용사이트에서 유일하게 내 시선을 가져간 것은 당연지사 호텔이었다.

호텔과 항공사는 서비스직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련 학과도 있는 나름 서비스계의 전문 직군이다. 어릴 적부터 호텔을 꿈꾸는 많은 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실제로 근무해보니 나처럼 승무원에게 도전하다가 오신 분들 꽤 있었다. 그러니 나 또한 항공사의 실패는 자연스레 호텔의 도전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나는 승무원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 호텔에 지원하기로 했다.



모집 분야 : FO, RSVN, EFL, GRO, CON...


'객실 승무원'이라는 간단한 이름처럼 '호텔리어'라는 공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큰 착각은 당황의 파도를 만들었다. 음... 나는 체크인하는 그 사람이 되고 싶은 건데.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낯선 용어들 덕분에 하는 수 없이 호텔 공부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호텔에는 레스토랑을 관리하는 식음료부와 객실을 관리하는 객실부가 있었고, 내가 지원하고 싶어 하는 '체크인 그 직원'은 객실부에 속해있었다. 심지어 위의 모집 분야에 적혀있는 직무가 모두 객실부에 속할 정도로 하나의 부서 내에도 세세하게 직무가 나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차선책인 직무여서 마음이 가지 않았지만 취업을 하려면 하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더 해야 했다.




Bell man/ Door man : 호텔 입구에서 문을 열어주시고 짐을 도와주는 직원

FO(Front Office) : 로비에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도와주는 직원

CON(Concierge) : 호텔 이용 시 발생하는 요청사항이나 주변 지리 문의 등을 도와주는 직원

GRO(Guest Relation Officer) : 전화 응대 및 고객의 불편 사항을 일차적으로 처리해주는 직원

EFL(Executive Floor Lounge) :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서 도와주는 직원

RSVN(Reservation) : 객실의 예약을 도와주는 직원

House Keeping : 객실의 청결과 위생을 책임지는 직원




내가 찾는 체크인 그 직원, 즉 FO라는 포지션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직무를 정하니 이제 회사를 정할 차례였다. 그러나 살면서 호텔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신라호텔, 롯데호텔, 워커힐호텔 말고는 아는 곳이 없었다. 마치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말이다.

공부하면서 메리어트, 아코르, 힐튼이라는 외국계 브랜드 호텔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조건 여기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는 저 멀리 사라진 열정을 되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열정이 아닌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체재로 '자부심'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실 말이 좋아 자부심이지 '이제 승무원 준비 안 해?'라는 말이 너무나도 듣기 싫었기에 그보다 더 좋은 곳에 갔다는 말로 질문을 덮고 싶었다. 그래서 큰 곳에 가야 했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우아'라고 할만한.



다행히도 서류를 지원한 후 며칠 혹은 몇 주 뒤 몇 군데에서 서류합격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열정으로 지원한 차선책이었지만 막상 면접을 볼 생각을 하니 이제 정말 현실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래, 나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호텔 준비생이야.




호텔 상식 :
호텔은 크게 고객을 응대하는 오퍼레이션과 회사를 운영하는 백오피스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오퍼레이션은 객실부, 식음료부, 조리부에 해당한다.
객실부에는 프런트 데스크(Front Desk), 벨맨/도어맨, 컨시어지(Concierge), 게스트 서비스(GRO), 하우스키핑(Housekeeping), EFL(Executive Floor Lounge)가 포함된다. 객실의 예약을 담당하는 예약실의 소속은 호텔마다 조금 상이하지만 대게 객실부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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