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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Mar 14. 2021

그렇게 하지 말라고

You would better stop that


 ‘글쓰기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런 문장들만 피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같은 포스트를 보다 보면 뜨끔뜨끔 속이 저려 끄적이기는커녕 혀 안에서도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글이든 뭐든 그러지 말아야 할 것, 피해야 할 것들만 쏙쏙 골라서 잘도 했었는데 과연 잘못, 잘 못하기가 쉬워서 이러는 걸까. 왜 늘 잘하기는 어려운 건지. 잘하기 어려운 것을 잘하는 것을 잘 한다고 하는 말이 가진 진짜 의미가 뭔지.     


 이십 대 중반에 한 육 개월 정도 백수이면서 프리랜서로 지낼 때가 있었다. 잠깐 다녔던 회사 차장의 소개로 자그마한 홍보 콘텐츠 기획 회사가 맡은 일에 참여했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등록된 한옥 스테이 업체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A4 한 장 반 정도의 소개글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쓰는 글마다 욕을 하도 먹어서 머리에 돌이 앉은 기분으로 삼 개월을 보냈었다. 결국 내가 맡았던 분량을 새로 섭외한 경력자와 나눠 써서야 겨우 마무리했었다. 초반에 하루는 담당자가 나를 옆에 앉혀두고 내가 쓴 한 장 반 분량의 글을 펜 같은 메스를 들고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내며 거즘 여덟 시간을 내리 해부하기도 했었다. 자신이 누군가와 같이 만든 책이 몇 년도 어떤 부문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내용도 곁들이며 본인의 지도력과 그 시간이 가진 뜻깊음에 대해서도 새겨줬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들만 쓸 줄 아는 나를, 글 쓰는 법 포스트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빨고 말릴 틈 없이 다시 또 빨고 빨았다. 멘탈이 희뜩하게 바랄 때쯤 사무실에서 나왔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를 들었던 기분이나 마음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해야 했고, 나도 최선을 다해 내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최선에 확신이 있었고, 나는 내 최선에 확신을 잃어갔다. 어떤 말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그런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내 문장, 나 자신에 자신이 있었는데, 그녀의 평가는 흰 바탕 위에 쓴 검은 연결과 마침표 중간중간을 간단하게 부러뜨렸다. 그때마다 자신감도 함께 부러졌다. 전적으로 그녀의 탓만은 아니었다. 부러뜨리지 않아도 될 것을 부러뜨릴 리는 없다. 문제는 그러는 도중에 꼭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지.     


 나는 요즘 좀 자발적으로 부러졌다. 그때보다는 덜 비참하다. 타력에 의한 게 아니라.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친구에게 세상은 참 상대적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하위에서 최하위보다 낫다고 안심하는 게 싫다. 위로든 글이든 만남이든 내게서 나온 것들이 뻔하기만 할까 봐 주춤한다. 한참 전에는 그런들 안심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때 나는 내가 하위인 줄 몰랐다. 그래서 거침없이 위로하고, 재지 않고 쓰고, 공백 없이 만나면서 금세 속이 편해졌었다. 처지를 분명하게 알아가는 건 성장인지 청승인지.      


 타력이 아니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왜 부러졌는지 명료하지가 않다. 어딘가가 달랑거리는 걸 보니 절단은 아니다. 절단도 그만한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쓰다 보면 구체화가 되겠지 싶어서 글을 시작했는데 잡념만 는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게 더 낫다고.’ 말하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얼마나 알고 있어야 누군가가 하는 일에 대해 멈추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자신만만해야 더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간단하거나 명백한 노하우, 꿀팁 같은 거 말고, 글쓰기나 한 사람의 세계처럼 고유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데에서 가이딩 하는 이들이 비아냥 없이 대단하다. 그녀가 그때 나를 여덟 시간 동안 부위별로 진단했던 것은 떼어낸 부분의 결함을 제대로 볼 줄 알고, 다시 제자리에 꿰매 놓을 수도 있다는 자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그녀도 이런 면에서는 대단하다.     


 봉합된 부분이 아물고 흉이 주름처럼 자연스러워지게 만드는 건 내 몫이었는데 불편한 감정만 팽팽하게 당겼다 놓았다 반복해왔다. 음 그러니까. 내가 부러진 부분은 그녀가 봉해 놓은 자리다. 글쓰기 백서의 충고가 박힌 내 속이고, 여태 이해하지 못한 어떤 해법이나 누군가의 경험담이 고인 뇌고, 지금까지 겪은 크고 작은 좌절을 봐온 눈이고, 또..     


 자생력은 좋은 편인데, 자각이 한참 느려서 매번 중증이 되어야 발견한다. 어떤 세계를 잘 쓰기 위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은 타인의 명확함에 주눅 드는 눈치 보기와 내부에서 생성되는 쉬운 말들이다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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