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누군가의 긴 댓글을 읽으며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0년 무명배우의 사연이 나왔는지 여기에 단 누군가의 댓글이 기사화됐다. 기사에는 무명배우의 지금까지와 이를 들은 보살들의 반응이 짤막하고 목적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아래에 한 사람의 댓글이 인용돼 있었다.
[어떤 직업군이든 다 그렇지만 특히 예술 쪽이 이런 상태가 되기 쉽고 무서운 건데,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될 수가 있다. 지금 사연자분이 딱 이건데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자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걸 애써 피하는 거다. 왜냐면 평가받았다가 '배우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편안하다. 트위터 가보면 일러스트레이터 되고 싶다고 하면서 머리밖에 못 그리는 애들 수두룩하고 만화가나 웹소설 작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완결작도 하나 없는 애들 많다. 다들 이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된 거다. '난 만화가가 될 수도 있어! 단지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
무명배우의 사연에 관심이 간다기보다는 그저, 기사에 인용된 이 댓글이 내 멱살을 잡더니 어떤 코앞에 바짝 끌어다 꼼짝 못 하게 했다. 악력이 어찌나 군더더기 없이 센지 허둥대지도,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끌려가 딱 멈췄는데, 그 어떤 코앞이 거울에 비친 내 코인지 저 댓글을 쓴 알지도 못하는 이의 코인지 잘 모르겠다.
쪽팔렸다. 어느 정도는 나 스스로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걸,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걸, 백은 아니더라도 저 댓글이 남긴 의도나 본질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는 걸 들킨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몇 가지는 좀 다르지 않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내가 얼마나 짧게 노력하는 사람인가. 얼마나 쉽게 손을 터는 사람인가가 머리를 스쳤다. 이십 대의 나는 내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 저 무명배우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구상해본 적도, 맹목적으로 쫓았던 적도 없으나 결과적으로 어쨌든 편안한 쪽을 택했다. 저 댓글이 말하는 것처럼.
더 나아갈 방법을 모른다고,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고, 어떤 상황들은 나를 그럴 수 없게 해 왔다고, 세상에 끊임없이 투사해온 나만 살아남았다. 입만 살아남았다.
자신이 가진 약점이나 불리한 점들을 명료하게 추려내고 싶지 않은 건 어쩌면 본능이겠지. 발가락 끝에 닿을 듯 말 듯 할 때까지 최대한으로 내 곁에서 멀리 밀어 놓으려고 했던 내 게으름과 패배감이 저 댓글 아래 달렸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를 마주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쌩 직면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이 댓글로 말미암아 끝없이 비관적이 되고자 하는 건 아니고, 어쨌든 뭐 이렇게 또 하나 깨달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쓴 말을 듣고 쓰게 알고 나면 조금 덜 비겁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 지금도 그렇다는 것.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를 이 방법에 누군가는 ‘냉소나 염세에 중독된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거다. 응원과 희망에 초점을 맞추면 더 바르고 밝고 영양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으니까 냉소와 염세로 피하는 거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