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질문에 발끈했던 내 스물넷 즈음의 일이 떠오른다. 사원증이라는 것을 처음 걸어본 그때의 나는, 시골 촌닭에서 혼자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발맞춰 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상경과 성공, 공동과 보통 같은 것들의 미감을 흐릿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렸고 몰랐고 또 나름 순수했는데 자격지심이 심해 누가 좀 깔볼 것 같으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하찮은 송곳니쯤을 내제하고 있는 핫바리였다.
아무튼, 그때 우리 팀 차장은 내 회사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다른 팀 차장과의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우리 셋은 뭐가 맛있다는 집에 가서 그 메뉴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앞선 대화의 과정 없이 대뜸 취미가 뭔지를 물었다. 그와 동시에 네 개의 동공이 내 입을 주시했다. 취준의 기간은 나를 괴롭혔었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쓰기를 반복했던 자소서의 압박이 다 가시지 않은 때였다. 취업으로 이제 막 숨을 고르면서도 지독히 따라붙는 긴장을 느끼던 때. 그의 질문은 점심시간에서까지 나를 평가하려는 면접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그럴듯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취미와 특기 하나쯤은 있어야만 했는데 딱히 그런 게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어낸 이야기만 해오던 참이었다. 그걸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준비 없이 면전에서 속일 자신도 없었고. 더 정확히는, 그에게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머리 굴린 게 뻔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기 싫었다. 팔짱 낀 그를 보며 나는 악의를 감추지 않는 것으로 주눅 든 것을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차장님은 취미가 뭐 세요? 진짜 제 취미가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거세요? 사람들은 왜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들을 하는 걸까요?’
그는 당장은 당황했었다. 그리고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혼자 가만 생각해보며 이런 되바라지고 가짢은 것이 있나 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때의 내 대응이 사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문의 의도에 저의가 있었든 아니든 싸가지 없게 행동한 것을 합리화하는 건 좀 치사하니까. 그런데 그런 건 있다. 꼭 이런 류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통상적으로 알 수 있을 만한 상대의 상태나 상황, 민감, 곤란한 어떤 부분을 가로지르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음을 알았다는 것. 그 차장처럼 질문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보낸 과정이 꽤 길다. 앞으로도 조금 더 남았다.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을 틀리지 않게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다. 종종 나조차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 나날들이 타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별로 상관없다 어떻게 생각하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질문 앞에서는 허둥댄다.
‘너는 요즘 뭐하냐?’
가끔 보는 그가 최근에 이미 물었던 질문, 이미 답했던 내용. 가끔 중에 한 번 더 봤던 그날 다시 물은 같은 질문, 같은 표정, 똑같은 그 질문의 중량. 쌈닭의 기세가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꽥 소리를 질러버렸다.
‘저번에 똑같이 물어봤었잖아요! 그래서 자격증 준비한다고 했었잖아요!’
그의 기억력 쇠퇴 따위엔 관심 없다. 그를 만나는 게 어쩐지 반갑지 않고 께름칙하게 뭔가 얹힌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가 이거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만날 때마다 그랬다. 너에게 관심이 있는 어른으로서 묻는 거야 라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자 내가 지금의 니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줄게 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무관심보다 못한 그의 관심이, 반복이 지겨웠다.
따지고 보면 이건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만 국한된 감정은 아니다. 가장한 마음이 가증스럽다는 거다. 왜 아닌 마음을 긴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건지. 그게 뭐든 묻고는 듣지도 않을 빈껍데기 같은 질문을 왜 하는 건지. 대단해 보이진 않게 그렇다고 한심해 보이지도 않게 나를 증명하고자 버둥댔던 이전의 답들이 불쌍해졌다. 엘리베이터의 양쪽 거울에 비친 수많은 나의 반복이 빠르게 지워졌다. 때마다 달랐지만 여전히 나였던 내가. 상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질문이, 그런 관심이 결국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신경 안 쓰면 그만이겠지만 내 일이 되면 그게 되나..
그가 싫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왜일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나를 만났네. 어떤 함유를 가진 말이든 내가 나를 믿으면 답은 그대로 남고, 빈 껍질이었던 질문들은 가볍게 날아가거나 힘없이 부서질 것이다. 의도 없이 습관처럼 묻고 잊는 일상의 말들은 널려있고, 그것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지는 듣고 답하는 사람에게 유리할 것이고. 또 이렇게 쓰다 보니 알겠다. 이걸로 내 열등감과 소심함 또 한 겹 벗겨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