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
나와 동생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컸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근한 사이였고, 더더욱 죽음과 빈자리를 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만 해도 빈자리를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병문안을 갈 때마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로 돌아가실 것은 생각도 못 했다. 어쩌면 빨리 채비를 해서 떠나버린 할머니는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하기 위한 마지막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못된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할머니에게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되었느냐는 마음을 갖는 건 너무나도 이기적인 생각일까.
할머니와의 기억은 최근 2년 동안은 안 좋았던 기억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는 점점 더 증상이 심해지셨고, 가족들을 지치게 했다. 치매라는 병이 정말 지독한 병이라는 것을 내 가족이 앓고 나서 느끼게 되었다. 내 마음엔 할머니를 잘 챙겨드려야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할머니에 대한 안 좋은 생각도 자리해 갔다. 할머니의 뒷바라지를 하는 몫의 8할이 엄마였고, 엄마도 점차 건강에 부담을 느끼며 안 좋아지는 것을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이 커갔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였다.
확실한 건 날이 갈수록 커지는 할머니의 고집과 거짓말에 엄마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지쳐나가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본인께서 알고 계셨던 걸까? 최근 3개월 전부터 할머니는 변했던 것 같다. 고집도 줄었고, 우리와 장난이며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마치 초등학생 어린 시절의 할머니 손에 자란 나의 관계로 돌아간 것 마냥 재밌었다. 아빠의 생일 땐 축하 노래까지 직접 불러주었고, 다가올 엄마의 생일 땐 할머니께서 직접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나도 생일이었는데 왜 노래 안 불러주냐고 할머니께 떼를 썼더니 대신 내가 좋아하는 치킨을 사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약 2주 전까지 오갔던 말이었는데, 그렇게 할머니의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다.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5월 말 어느 날 아침. 부모님께 할머니가 다니는 돌봄 유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할머니가 집에 쓰러져계셔서 입원했다는 얘기를 하셨다. 할머니 방에 쓰러진 상태로 눈만 멀동멀동 뜨신 할머니를 유치원 원장님이 발견해 입원하게 되었다. 원장님 덕분에 할머니는 가까스로 큰 위기를 넘기셨다. 3일의 입원 기간을 가지신 후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퇴원 후 급격히 나빠진 건강으로 다시 입원을 하였고, 그렇게 할머니는 약 1주일간의 병 투병을 하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퇴원할 때의 좋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돌아가시기 이틀 전, 병문안을 갔을 때 할머니는 눈도 뜰 힘이 없었는지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 계셨다. 할머니 어깨를 두들기며 세영이 왔다고 할머니 할머니 불러보아도 아무 미동도 없으셨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 엄마와 아빠가 방문해 할머니를 불렀을 땐, 엄마 쪽으로 고개를 아주 살짝 돌리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한번 바라보고 싶었던 걸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셨던 걸까. 그렇게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시간은 꼭 반성의 시간 같았다. 할머니에게 그동안 얼마나 못된 손자였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자리 같았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첫 시작부터 그랬다. 미리 만들어 놓은 영정사진을 할머니가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찾을 수 없어서 할머니의 잘 나온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작년 12월 할머니 생신 때 찍은 사진이 전부였다. 같이 살면서 매일같이 보면서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잘 찍어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할머니 생신 때 찍은 사진으로 만들어 급하게 차려진 할머니의 장례식장. 아직 믿기지 않는 것인 것 눈물도 없이 멍하니 영정사진만 바라보았다. 이처럼 할머니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영정사진에 웃고 있는 할머니의 입꼬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보는지에 따라 꼭 슬퍼 보이기도, 기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례식 내내 좀처럼 실감이 안 나는지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물론 꾹 참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30년을 넘게 살면서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정하고 싶었거나 혹은 죽음이 주는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게 크다. 물론 부정한다고 한들 할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할머니를 보낼 준비가 안된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내 꾹 참아왔던 눈물은 화장터로 가는 길에 터지게 되었다. 화장터로 가는 길은 그동안 할머니가 다녔던 돌봄 유치원의 등굣길과 같은 경로였다. 할머니가 매일 아침 이 길을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며 할머니의 시선으로 이 길을 바라본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버스에 타있는 친척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정적만 흘렀다.
마음을 부여잡고 도착한 화장터에서 장례지도사님이 할머니 관에 놓여있던 돈을 손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주시는 마지막 용돈이라고. 할머니는 평소에도 큰아빠에게 용돈을 타시면 다 큰 우리들에게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30살이 훌쩍 넘어버려 출근하는 나에게 학교 잘 다녀오라고 했다. 할머니에게 난 영원히 학생이라서 그렇게 용돈을 주셨던 걸까. 다 커서 돈도 버니까 할머니 맛있는 거 드시라고 극구 사양을 해도 손에 꼭 쥐여주던 용돈들이 떠올랐다. 오늘 할머니로부터 받은 마지막 용돈 5만 원은 절대 쓸 수 없는 돈이 되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 가족들이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 겁이 많아 병원도 못 가던 할머니가 혼자 화장터에 들어가서 얼마나 떨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세상 슬픈 표정으로 보였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처음 본 아빠의 떨리는 얼굴과 흐르는 눈물은 이번에도 나에게 큰 슬픔을 전했다. 내게 할머니이기 전에 아빠에겐 엄마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아빠가 가장 슬프지 않을까. 눈물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한 아빠 뺨의 경련과 흐르는 눈물은 그 어떤 떨림과 눈물보다 더 슬펐다.
평소 사후세계에 대해 많이 믿는 편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화장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대기실에서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향해 다가온 검은 나비 때문이었다. 이 나비는 마치 우리 가족들을 위로라도 하듯 가족들을 크게 2바퀴 돌고서 유유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고모와 아빠가 할머니가 검은 나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해 거동을 잘할 수 없었던 할머니는 생전 잘 못 걸었던 설움을 털고 훨훨 자유로운 나비가 된 걸까. 너무 슬퍼하던 가족들을 위로라도 해주듯 나비의 몸을 빌려 주변을 두 바퀴 돌고 떠나간 걸까. 이 순간에 이 건물에 이 대기실에 나타난 검은 나비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든 이별은 닮은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있을 때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야 느낀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다.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만 남게 될 뿐.
할머니랑 저녁을 한 번이라도 더 같이 먹었더라면,
사진이라도 하나 더 남겨 두었더라면,
말을 조금 더 따듯하게 해 주었더라면...
분명 좋은 기억도 많은데, 내가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 이런 생각들이 어쩌면 내가 할머니를 진짜 사랑했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비록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갑작스럽게 떠나가셨지만, 5년 만에 할아버지를 만나 좋은 곳에서 잘 지내실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할머니에게 좋은 손자이진 못했지만,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좋은 엄마이자 할머니였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지금 순간만큼은 사후세계가 실제로 존재해 우리의 이런 마음이 할머니에게 닿으면 좋겠다. 이제 고생은 그만하시고 할아버지와 함께 멋진 곳, 이쁜 곳 여행 다니면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혹여나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면, 그때는 조금 더 살가운 손자, 조금 더 착하고 좋은 손자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