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았나? 불안하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에 내가 알고 있는 뜻이 정확한 것인지 자신이 없어져서 사전을 찾아봤다.
'불안'이란 마음이 편치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고 나니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한 단어가 맞는구나. 안심된다. 동시에 이런 기본 단어도 자신이 없어서 찾아보다니 정말 한심하다. 잘하는 게 도대체 뭐냐? 하는 비난조의 생각이 같이 든다. 휴직을 시작하고 열심히 힐링하고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은 가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바라보는 내가 있다. 휴직을 하면서 '잉여'의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겠다고 시작했으나, 3주가 지나니 '불안'이 찾아온다. 내가 정말 이 시간을 누려도 되는 건가? 나 따위가 어떻게 이런 시간을 누리지? 하는 자책이 반복된다. 오늘은 매일 아침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건강한 주스를 만들어 먹고 운동을 다녀오던 건강한 루틴이 깨졌다. 아침부터 릴스 보다가 운동 시간을 놓치고 못 갔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 같으니라고! 나 자신을 혼내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잠을 잤다. 자다가 남편의 전화에 일어나 보니 점심시간이다. 무엇을 먹을까 하고 릴스를 보다가 30분이 또 흘렀다. 자꾸만 릴스에 빠져드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 나 불안하구나. 어제저녁 내 살길 찾아야 한다는 친구의 전화에 내가 이렇게 놀러 다니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간이 허무하게 흩어질까 봐 불안해졌구나. 의미를 찾고 에너지를 모아서 내 살길을 찾아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될까 봐 겁부터 먹었구나. 얼어붙은 시장에 40대 아줌마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 무엇을 알아보는 것에 알아보는 에너지를 쓰자고 생각하자마자 무기력 해지고 하기 싫어졌구나.'
내 마음속에 에너지 통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텅 비어있고, 하나는 꽉 차있다. 현재를 위한 에너지 통과 미래를 위한 에너지 통이다. 현재를 위한 에너지 통은 꽉 차서 지금을 무엇을 할지 정하고 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오늘내일 일주일의 일정을 계획하고 행동할 때 에너지가 넘쳐난다. 반면에 미래를 위한 에너지 통은 텅 비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계획, 행동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뻗어 버린다. 정전, 번아웃, 누워있음, 하기 싫음, 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우울해진다. 현재를 살며 힐링할 때는 세상 에너지 넘치고 힘차게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돌아다니는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하면 암전이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미래를 위한 움직임이 잘 되었으면 휴직하지 않았겠지. 하고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우울증을 인정하고 난 다음 생긴 버릇 하나는, 나의 고정적 생각 패턴이 눌릴 때 멈춤 버튼을 찾은 것이다.
'이유는 없어. 아직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야. 에너지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를 생각한다. 에너지를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잠'이다. 피로가 몰려오는 상태를 인지하는 속도가 늦어서 괜히 부아가 치밀고, 짜증이 올라올 때 수면 시간을 먼저 체크한다. 운동 시간을 늘렸기 때문에 운동으로 인한 피로가 쌓여있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채우는 외향형이지만 체력은 저질체력인 것을 자꾸 잊어버리기에 몸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그리고 잠을 일찍 자려고 애쓴다. 쉽게 잠들기는 어렵지만, 어제는 아이온팩을 하고 잤더니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자꾸 눕다 보면, 낮에도 누워있고 그러면 또 우울해진다.
'잠'이 도움이 안 될 때는 내 마음에게 물어본다. 약간 오글 거리기도 하지만, 배우 진서연 님이 말씀하셨듯이 '나'의 엄마가 되어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마음이 어때? 뭐 하고 싶어?' 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는데 3년이 걸렸다. 내가 나에게 대답하는데도, 남들이 들으면 어떡해? 남들이 흉보면 어떡해? 남이 듣기에 지금 좋은 대답이 뭐지?라고 생각하며 나를 속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동안 나를 속여왔던 시간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신뢰를 주어야 한다고 듣고,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야 조금 솔직해졌다. 지금도 때때로 왜 빨리 안 하냐고 조급함이 밀려와 스스로를 압박하기도 했다가 릴랙스 하기도 했다가 반복하고 있다.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그렇게 인정받아왔던 세월을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다정히 보듬어준다.
아침에 눈뜨기가 싫을 때는 모닝페이지를 쓴다. 나의 규칙은 딱 30분만 쓸 수 있는 만큼 쓴다. '아티스트웨이'에서 이야기하는 모닝페이지는 3페이지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3장을 쓰려면 나에게는 1시간 30분 이상이 필요하다. 아침 시간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30분만 딱 정해두고 쓴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데 대부분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신경 쓰는 부분들이 튀어나온다. 그런 말들을 두서없이 쓰다 보면 어느새 정리가 된다. 경직된 상태일 때는 자유로운 모닝페이지에서 조차 형식과 문법과 서론 본론 결론을 맞추려는 내가 있었다. 어떻게 하든 자유롭게 하면 된다던 인솔자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30분의 시간 제약을 두고 그동안에 한 페이지에서 한 페이지 반을 쓴다. 때로는 반페이지만 쓰기도 하고, 한 페이지를 못 채우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적어볼 수 있는 공간이 내게 있어서 다행이다. 글쓰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속에서 계속 떠다니던 문장과 단어들을 정리해서 뱉어내고 나면, 정제가 되고 정리가 된다. 더 이상 그 단어와 문장이 나를 집착하지 않고, 에너지가 되어 행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 글쓰기가 나에게는 치유의 목적이구나. 치유의 글쓰기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것도 현재의 에너지 통에서 꺼내는 거 아냐? 지적하는 목소리는 잠시 넣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