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민 Sep 06. 2018

존 맥케인, 그 역시 영웅이 아닌 인간이었다.

*2018년 8월 26일 티스토리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트럼프주의의 득세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정통파 미국 보수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졌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오늘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베트남 전쟁 중 5년 이상 포로 생활을 하며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국을 배반하지 않은 애국심, 원칙과 소신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던 그의 대쪽같은 성품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당과 진영을 막론하고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존 맥케인” 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세 가지의 명언”이 있다.

#1 That is my final answer


맥케인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1967년 10월 폭격 임무 중격추당해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물속에 빠져 익사할 뻔한 반죽음 상태로 베트남군의 포로가 되었다. 당연히 치료는 커녕 모진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30대 초반이던 이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팔을 어깨 위로 들지 못하는 등의 장애를 지고 살아갔다.


포로로 잡힌 지 몇주가 지나서야 그의 아버지가 미 해군의 높으신분이라는 것을 알아낸 베트남군은 허겁지겁 입원시키고 그를 조기석방하여 선전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맥케인은 “포로로 잡혔을 경우 적군의 조기 석방 또는 특별 대우는 받지 않는다”는 미군 복무규율 규정만 되뇌이며 석방을 거부했다. 베트남군은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 치료받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군의관의 소견까지 동원하면서 수 일간 설득했지만, 적군 포로의 석방은 포획 순서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자기 순서가 돌아오기 전 먼저 잡혀온 전우들을 두고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결국은 간수가 최후의 담판에 나섰다.


“윗선에서 이제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 (Our senior wants to know your final answer.)”

“대답은 전과 같다. 거부한다. (My final answer is the same. It’s no.)”

“그게 정말 마지막 결정인가? (Is that your final answer?)”

“그게 내 마지막 결정이다. (That is my final answer.)”


결국 베트남군은 그를 석방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고문과 구타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의 석방 순서가 돌아와 포로수용소를 떠난 것은 그로부터 5년 반이 흐른 1973년 3월이었다.


#2 He's a decent family man and a citizen


2000년과 2004년 두 번 조지 W 부시를 상대로 경선에서 고비를 마신 맥케인은 결국 부시의 임기가 모두 끝난 2008년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상대는 미국 양대 정당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던 신예 버락 오바마. 맥케인 본인의 의도가 어쨌건 자연스럽게 공화당 지지층 속에서는 흑인 대통령의 등장을 경계하는 인종주의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네소타 주에서의 유권자 간담회 중에 사건이 터진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백인 여성이 “버락 오바마를 믿을 수 없다. 그는 (미국인이 아닌) 아랍인이다” 라는 돌발 발언을 한 것이다. 맥케인은 곧바로 말을 끊어 마이크를 빼앗고, 다그치는 듯 세번이나 “No Ma’am”을 반복하고 말했다:


“(오바마는) 가정을 사랑하는 성실한 사람이고 미국 시민입니다. 단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저와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그게 이번 선거의 핵심입니다. (He’s a decent family man and citizen that I just happen to have disagreements with on fundamental issues, and that’s what this campaign’s about.)”


물론 맥케인이 여기서 한마디 덧붙여 “그리고 설사 아랍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어때서요?” 까지 말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간담회 자리에서 상대 후보를 부당하게 헐뜯는 지지자에게서 마이크를 빼앗고 약간 부족하게라도 일갈을 날릴 수 있는 정치인이 세상에 몇이나 될지 되묻고 싶다.


 #3 The failure is mine, not yours


맥케인은 결국 낙선했다. 생각보다 득표율 차이가 크게 벌어져 선거 당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이미 패배는 자명해졌고,  그는 결국 캠프에 모여든 유권자들을 상대로 승복 연설을 한다. 치열했던 선거전의 부담을 내려놓은 안도감과 10년이상 품어온 대권 주자로서의 꿈을 포기하는 회한을 진심있게 표현한 이 연설은 그 전체가 승복 연설의 교과서와 같은 명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가 연설 중반에 던진, 참 쉽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한 마디 고백이었다:


“오늘 우리는 패배했지만, 그건 저의 실패입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아닙니다 (And though we fell short, the failure is mine, not yours.)” 


물론 고인이 늘 이렇게 원칙과 소신이 넘쳐나는 간지나는 인생만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존 맥케인은 원칙주의자였지만, 정치판의 현실은 항상 그 원칙의 한계를 시험했고, 때로는 무너트리기도 했다. 어찌보면 본인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보가 위험할 때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믿음으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이는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선거마다 민주당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되는 애리조나 주를 연고로 하다 보니 그 역시 백인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때로는 반이민 혐오 정서의 힘을 빌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의 정치적 최저점은 단연 2008년 대선에서 최악의 막장 부통령 후보이자 트럼프주의의 조상뻘 쯤 되는 세라 페일린을 런닝메이트로 고른 것이다. 페일린이 골수 보수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보여준 인종주의적, 반지성주의적 행보는 돌아보면 맥케인 본인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전통 보수주의의 수호신 맥케인이 자기 손으로 미국 보수주의의 주류에 몰상식한 혐오 세력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만 것이다. 그것이 불과 10년 후 도널드 트럼프라는 핵폭탄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본인의 인종관 역시 때로는 구설수에 올랐다. 트럼프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도 결국은 70대 백인 아저씨다 보니 늘 전향적인 태도만 보여 준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과거 자신을 고문하던 베트남군 간수들을 이야기 할 때 굳이 매번 “Gook”이라는 동양인 비하 표현을 사용하던 것은 언론에서 수 차례 논란이 되어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끈질기게 고치지 않았다. 그것조차 고인에게는 일종의 소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등장 이후에는 오랜 시간동안 과거의 대쪽같은 성품은 온데간데 없이 심하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포로로 잡힌 패배자 따위 전쟁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심한 인신모독 까지 당했음에도 트럼프 지지층이 이탈할 경우 재선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선거 끝까지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하지 못했다. 이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인생이 최종장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한 이후에야 트럼프의 막장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나마 그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공화당이 적법한 의회 절차를 무시하고 통과시키려 했던 의료보험 보장법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당론에 반하는 캐스팅 보트로 무너트린 것이 많은 국민의 머리속에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된 덕분에 최후에는 “원칙주의자” 이미지를 조금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존 맥케인은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딛고 일어나 엄청난 성공 신화를 일군 드라마와같은 인생을 살았다. 군인으로서, 공직자로서 60년 이상을 국가에 헌신하면서 미 국민을 감동시킨 수많은 명장면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고, 그의 인생은 때로는 아무리 대쪽같고 올곧은 사람일지라도 현실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나 역시 생전에 때로는 고인을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때로는 그의 무기력함에 철저히 실망하기도 했다. 결국 그가 지구 반대편 먼 나라에서 지켜보는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교훈은 역시 누구든 공과 과가 공존하다는 것을,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영웅 또는 악당으로 손쉽게 제단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준 것 아닐까.


글을 마치며, 그의 인상적인 명언을 한마디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고인이 작년 말, CNN에서 한 마지막 방송 인터뷰 중에 있었던 일이다. 불과 몇주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에게 진행자는 “국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 줬으면 합니까?” 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국에 헌신한 사람. 늘 옳지도 않았고, 실수도 많았고, 잘못도 많았던 사람. 하지만 그래도 조국에 헌신한 사람. (He served his country, And not always right, made a lot of mistakes. Made a lot of errors. But served his country.)”


그 역시 마지막에는 영웅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 같다.


페북: https://www.facebook.com/juminlee

트위터: https://twitter.com/oldtype

글쓴이는 평범한 관심바라기입니다.  읽어보고 공감하셨다면 밑의 하트모양이 "like it" 버튼을 눌러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기본권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