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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Nov 15. 2018

국가는 가치의 공동체다


민족주의는 애국심과 정반대의 말이며도리어 매국에 가깝다국가의 생명력은 가장 소중한 도덕적 가치에서 나온다. ‘오로지 우리의 이익만이 가장 우선시된다!’  생각은 그런 도덕적 가치를 말살하는 것이다.” 


월요일 파리에서 열린 1차대전 종전 기념행사 중,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에 나온 말이다. 발칸 반도의 이런저런 민족주의가 도화선이 되고 참전 각국의 호전적 민족주의가 기폭제가 된 1차세계대전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기도 하겠지만, 당일 기념식에 참석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기도 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지원 유세 중 특유의 근거없는 당당함으로 “나는 민족주의자” 라고 선언한게 불과 3주 전이다.


민족주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20세기 초반 인류를 파멸의 언저리까지 몰고갔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 민족주의가 21세기 초반에 다시 세계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은 민족주의와 애국이라는 두 개념 사이에 선을 긋고 싶었던 것이다. 민족주의는 나라 사랑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라가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데 민족주의만큼 위협적인 것도 없다.


민족과 국가는 일치할 수 없다. 국가는 법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법대로 한국인이 되고, 귀화 같은 예외적인 경우 역시 법에 정해진 대로만 하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그렇게 법은 미리 정해놓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그사람들에게만 법을 바꿔 쫓아낼수도 없다. 법이란 또 모호하기 때문에, 설사 정말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도 100% 성공하기는 어렵다.


민족은 다르다. 민족은 사상의 공동체다. "민족을 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를 생각할때 흔히 인종, 언어, 문화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그건 구성원의 요구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인"을 정의할 때는 딱히 종교를 떠올리진 않지만, 세상에는 종교가 다르면 무조건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곳도 많다. 반면 우리말을 못하는 사람은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민족도 있다. 한번 만들면 바꾸기 어렵고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법과는 달리,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 변할 수 있는게 민족이다. 


그렇다보니 보통은 국가가 민족보다 넓은 개념이 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국가공동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들을 외부인으로 만들어 공동체에서 제외하려고 한다. 민족주의는 통합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히려 법치국가라는 넓은 개념을 민족국가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바꾸려 하는, 가장 무서운 분열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그래서 민족주의가 득세하면 국가 공동체에서 외부인들을 떼내기 위해 국력을 소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법으로 정해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쫓아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국가 권력이 강해지고, 초법의 경계를 넘나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서슬퍼런 독재와 국가 차원의 폭력이 시작된다. 외부인들은 소외되거나 아예 쫓겨나고, 그렇게 국가는 민족주의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인재를 잃으며 작아지고 약해진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나치 독일 치하의 유대인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하여 결국 핵폭탄 개발의 주역이 된 것은 극단적인 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흔히들 생각하는 “한국인”의 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이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고, 또 외국으로 발을 돌리는 사례만 생각해도 이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로 인한 분열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법만으로는 어렵다. 법은 이성적이고 무미건조하며 접근하기 어렵다. 민족주의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단군 할아버지와 반만년 단일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어쩌고 저쩌고를 논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에게 쉽게 소속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반면 국적법 제2조 1항을 낭독해 준다고 가슴이 뜨거워지는건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잘 없을 것이다. 


해답은 가치에 있다. 민족주의의 부작용 없이 국민의 힘을 한데로 모으기 위해서는 국가 역시 단순한 법의 공동체가 아닌, 가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가치는 민족주의와 같은 분열의 가치가 아닌, 최대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포용의 가치다. 한국인 부모를 가졌고, 유교문화에 그냥저냥 적응할 수 있으며, 김치와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한국인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흔히 생각하는 한국인과는 달라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한국인이 될 수 있는 나라를 향해 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가치란게 무엇인가? 필자 혼자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몇가지 떠오르는 것은 있다: 자식들은 무조건 당신보다 편하게 살아야 한다며 죽을똥살똥 고생해서 황랑한 폐허를 두 세대만에 풍요로운 경제 대국으로 만든 우리 할아버지, 어머니 세대로부터 전달받은 사랑과 열정이다. 독재자가 나타나서 혁명을 했더니 또 독재자가 나타나서 또 혁명을 하고, 심지어 그로부터 삼십년이 지나 지난번 독재자의 딸이 나라를 말아먹으려 하니 해본 적도 없는 젊은 세대가 다시 또 바닥부터 혁명을 만들어내는, 몇번을 쓰러트려도 계속 일어나는 민주주의를 향한 오뚜기같은 근성과 열망이다. 70년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다른 나라의 몇배 빠르게 찾아온 수많은 변화를 수용하고, 아주 느리게나마 조금씩 정의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뚝심과 용기다. 


국가는 가치의 공동체다. 미국에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있고, 프랑스에 “자유, 박애, 평등” 이 있듯, 우리 역시 많은 사람을 포용하면서도 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간지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도, 사회의 부조리를 격하게 지적하는 페미니스트도, 다수에게는 생소한 삶을 사는 성소수자도, 모두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 민족주의의 협소한 틀에 얽매이는 것이 애국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가치를 고민하고 지키는 것이 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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