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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Feb 03. 2019

한국 남자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남자와 싸우는 것"일까? "남자와 함께 싸우는 것"으로 만들 순 없나?

    며칠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의 2심 선고가 있었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유죄, 징역 3년 6개월.  1심 재판부의 무죄와 2심 재판부의 징역 3년 6개월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려면 법 해석의 차이보다는 사실을 보는 눈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안희정이 명시적으로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위협한 적이 없다는 점, 피해자가 특별한 거부 의사 표현 없이 지시에 순응했다는 점 등 “눈에 보이는 것” 만에 집중해 둘 사이에 업무상 위력의 행사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보다는 유력한 대선 후보와 그 수행 비서라는 둘의 특수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초점을 맞췄다. 겉으로는 설사 “너 이거 안하면 자른다” 라고 말하지 않았고, 불만 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것 같았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정치인 중 하나와 그 젊은 부하 직원의 사이라는걸 감안한다면 강압적인 성관계를 찾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은 양성평등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안희정의 이번 유죄 판결에 대한 재판부의 설명에서 이런 거부 반응의 원인을 어느정도는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때리거나 협박한 적도 없는데 단지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에 의해서 성폭행이라는 큰 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건 분명 어떻게 생각하면 섬뜩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 힘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피해자에게 얼마나 무섭고 괴로울 수 있는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공감의 어려움을 사회 단위로 넓혀서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이해가 된다. 지금이 조선 시대는 아니고, 우리 사회 역시 의식적으로 겉모습만을 본다면 이미 양성 평등의 9부 능선은 넘었다고 억지로 우겨볼만한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어린 시절 이유없이 남동생에게만 고기 반찬을 하나씩 더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 20대에 외모를 품평하며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던 남성들의 시선, 그리고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 어차피 애낳고 그만둘 사람이라며 대놓고 무시하는 직장 상사들의 행동. 뭔가 법전에 써있지는 않지만 직접 경험하면 너무나도 아픈 사회의 크고작은 부조리들이 하나하나 모여 대한민국 여성들을 억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남성의 입장에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안다. 그렇게 때문에 페미니즘은 평등을 위한 정당한 요구가 아닌, 이미 가진 자들의 투정, 또는 우리 것까지 더 달라고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기 쉬운 것이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회의 부조리가 개인의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성차별 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남성의 삶은 또 어떤가? 군대 시절 뭔지도 모를 "군기"라는 알수없는 개념때문에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적은 없는가? 신입사원 시절 회사 선배의 개인적인 잔심부름을 다니며 이를 갈던 적은 없는가? 사회에 나와서 똑같은 인간인데 단지 돈이 없고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눈물나게 억울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는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서도 “그래 사회 생활이 그런거지 뭐…” 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은 적은 없는가? 모든 남성이 살면서 느끼게 되는 이런 부조리와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느끼는 부조리는 결코 다르지 않다. 똑같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는 사무치게 느껴지는, 법전에는 안써있지만 모두가 아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 때문에 당연한 개인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남성을 옥죄는 수많은 부조리 위에 여성은 "성차별"이라는 한가지를 더 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차별은 여성에게만 의미가 없는, 남성은 그저 팔짱끼고 구경하면 그만인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할 수많은 부조리 중 지금 먼저 이슈로 부상한 것이 어쩌다 보니 성차별일 뿐이다. 이런 성차별을 해결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을 안그래도 힘든 남성에게서 빼앗아 여성에게 주는 제로섬 (zero-sum) 사회운동으로 봐서는 안된다. 남성과 여성이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반목하는 대신, 오히려 연대하여 성차별을 뛰어넘어 황금만능주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등 수많은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페미니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남성이 아니라, 이런 부조리를 통해 특권을 누리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기득권층이다. 남성이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거드는 것은, 본인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을 두고 남녀가 반목하는 지금의 현실이 오로지 남성만의 잘못만은 아니다. 남성을 연대의 대상이 아닌 징벌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 반응은 인간적으로 지극히 당연하다. 과거의 메갈리아, 지금의 워마드 같은 곳들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새로운 혐오주의 역시 경계하고, 범죄의 영역으로 확산될 경우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성차별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의 증상일 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사회가 지금까지 부조리하게 여성을 억압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된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 원인인 부조리를 없애지 않는다면 백날 "워마드와의 전쟁" 같은걸 선포해 봐야 분노의 형태가 변할 뿐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단적 페미니즘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근본적인 문제인 성차별 그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의 기행에 매몰되어 본질적인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자의식 과잉의 남성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설명하면서 여성에게 잘난척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 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페미니즘에 대한 내 생각을 남자들을 상대로 길게 둘러대는 이 글은 그보다도 더 쓰잘데기없는 “맨맨스플레인 (Man-Man-Splain)” 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힘을 합쳐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기는 커녕 갈수록 남녀간의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과열되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일단 해결책은 남성의 인식 전환 뿐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가 싫은가? 이해가 안가는가?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그 말과 행동에 분노하느라 정력을 낭비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페미니즘은 계속된다. 여론조사의 성별간 지지율차이에 조간반사식 반응을 보이는 것 외에는 대부분 성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정치권에서 "짠"하고 해결책을 들고 나타나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좋아하지만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그런게 아니다” 라고 말하는가? 그렇게 백날 떠들고 다녀봐야 어디 하늘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스스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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