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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Sep 12. 2019

권력의 정점에서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

조국 장관의 임명으로 보는 민주당의 뿌리깊은 비판 알레르기


2017년 2월 문재인 후보의 연설 중 항의하던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의 모습

  2017년 2월, 19대 대선이 한창이었을 때다.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겠다며 지지자들을 불러모아 행사를 했다.기조연설이 시작된지 10여분 후, 몇몇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일어나 연설을 방해하며 문후보의 차별금지법 반대 결정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문후보 지지자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한두명씩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한목소리로 “나중에! 나중에!”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18대 대선에서 처음 나온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다. 하지만 먼저인 사람들 중에 성소수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걸까? 문 후보는 조금의 낙선 불안요소라도 없애겠다는듯,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금지법에 대해 너무나 쉽게 양보하고 말았다.


  2년반이나 지나서 문재인 캠프의 성소수자 인권 정책에 대해 뒷북을 치려고 쓰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라는 구호는 한국 진보정치권 전체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오늘날 진보정치권의 주류를 차지하는 운동권 출신 86세대의 역사를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86세대는 민주화에 대한 끊임없는 집념으로 독재정권 타도에 앞장섰지만, 그 집념은 그들을 편협하게 만들기도 했다. 학생운동 단체 역시 결국은 80년대 한국의 조직사회였고,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서는 물리적인 폭력과 극심한 성차별 등 가부장주의와 권위주의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80년대는 젊은 학생운동가들에게 이런 부조리에 대한 완벽한 자성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대였다. 그래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비판이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공로 전체를 희석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없는 죄도 만들어 잡아가던 시절에 어떻게 스스로의 약점을 내놓고 토의하며 조직을 분열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은 독재를 타도해야 했고, 그래서 그 외의 문제는 다 “나중에”가 되었다. 1985년 공안기관의 “프락치”로 의심한 민간인 4명의 고문과 구타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유시민씨가 옥중에서 작성한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의 한 문구가 이런 한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시대의 폭력성이 민주화 투사들에게도 폭력성을 강요했던 비극으로 정상을 참작할 수도 있다. 문제는 독재정권이 물러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 후에도 현실 정치에 진출한 86세대는 우리 사회속 군사독재 잔재들로 인해 아직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음을 지적했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을 외치면서 운동권 시절과 같은 일치단결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정당한 비판과 자정작용을 허용하지 않는 풍조가 조성되었다. 서울대 민간인 납치고문사건에서 20여년이 흐른 후, 유시민씨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본인이 집행위원으로 있던 개혁당 내부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를 두고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조롱했다. 이 말을 보면, 독재정권과 싸우던 1980년대 민주화 투사 유시민, 그리고 보수정당과 싸우던 2000년대 정치인 유시민의 의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민주화는 됬어도 86세대에게 “나중에”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 어느덧 86세대는 대한민국 정치 기득권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보수정치의 기둥이었던 민정당계 정당의 지지층이 붕괴했고, 그 후에도 자유한국당의 삽질이 이어져 사실상 이제 멀쩡히 작동하는 전국정당은 민주당밖에 없다. 그리고 그 민주당은 86세대가 공고히 지배하고 있다. 내년 총선 이후 민주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게 될 것이고, 큰 이변이 없는한 이런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면 이제는 보수보다는 진보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시대다.


  하지만 "나중에"는 멈추지 않았다. 김경수, 손혜원, 정봉주, 탁현민 등,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도 진보 정치권의 수많은 인사들이 이러쿵저러쿵한 문제로 국민의 질타를 호되게 받았지만, 그때마다 진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자정 작용은 커녕 적극적으로 나서 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늘 “국민들에게는 송구스럽지만 적폐 청산을 위해, 개혁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 이라는 논지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된 힘없는 대학생 유시민이 하던 "나중에"를 이제는 정치권력의 정점에 선 청와대와 여의도의 86세대가 아직까지도 외치고 있다. 물론 흔히들 편향적이라고 불평하는 법원이나 검찰, 언론 같은 곳에 정권에 저항하려 하는 친보수성향 인사들이 대거 남아있음을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이권을 가진 권력의 주체들이 서로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 저항의 수준과 적합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더이상 그들이 생각하는 대의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나중에’로 퉁칠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시대는 아니다. 


  이례적으로 TV생중계된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의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개혁이 시급하니 임명할 수 밖에 없다"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이 연설을 들으며 2017년의 “나중에, 나중에” 구호가 어렴풋이 떠올라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검찰개혁 해야하니 이것도 또 나중에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개혁이 신빙성 있는 다수의 의혹들로 인한 국회와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국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불과 2개월전에도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거부를 무시하고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조국 장관이 없으면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인 걸까. 


  문대통령과 민주당을 무조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만큼 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좋은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쓰는 글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는 느리지만 꾸준히 공정해져 왔고, “나중에”가 통하는 시대가 어디서 끝났는지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백번 양보해도 최소한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민주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구실로 정당한 이견과 비판을 차단하던 보수정권들의 닮은꼴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피해의식으로 비판을 튕겨내려는 버릇은 버려야 할 때다.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바꿔야 할 것은 바꾸면서도 뚝심있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말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는 변수는 있지만, 아마 조국의 정치인생이 장관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몇주간 지겹게 논쟁하던 의혹들이 수면으로 다시 떠올라야 할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올 것이다. 그때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나중에 나중에”만 외치고 있다면 민주당 역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도태된 자유한국당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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