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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Sep 06. 2018

기본권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2018년 8월 7일 티스토리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발전을 어느 정도 이룬 사회는 기본권 문제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50년 전 우리 할머니 세대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25년 전 우리 아버지 세대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을 고민했듯이, 우리 세대는 그동안 사회와 국가 권력이 당연하다는듯 침해해 온 약자, 소수자의 권리를 고민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시대적 사명이 대두되면서 자연스레 그동안 음지에 내몰려있었던 기본권에 대한 논의들이 현실정치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게 여성 인권, 성소수자 인권, 난민 보호 등의 문제는 조선 왕조 시절부터 이미 민주주의를 논하던 서양에서나 고민하는, 문자 그대로 “남의 나라 문제”였다. 그런 남의 나라 문제들이 이제는 눈 앞의 현실이 되었다.


현실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인식의 변화는 늘 큰 저항을 동반한다. 우리도 지금 그런 저항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새 워마드나 메갈리아 같은 과격한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일탈에만 초점이 맞춰져  한국 여성들을 억압하는 뿌리깊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대한 반성은 실종되었다. 그런 구조적 문제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이 살고 있는 사회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일부 과격 세력의 존재는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된다. 워마드나 메갈리에서 퍼져나와 언론이 주목하는 반인륜적인 언행은 행동으로 발전하여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경우 처벌하면 그만인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에 매몰되어 본질적인 문제가 희석되고, 매채에서는 지레 겁을 먹고 여성인권 문제에 대한 논쟁 자체를 자체 검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주도 예맨 난민 사태에서 시작된 반난민 집단행동 역시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약자의 기본권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불신, 선입견이 쌓여 하나의 저항운동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저항심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고립된 정치세력으로 방조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적이 있다. 약자의 기본권 보호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으로 약자에 대한 증오로 변질되고, 그런 증오가 미쳐 날뛰다 보면 우리 모두 악마가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때문에 저항에 맞서 사회 인식의 변화를 이루기 위한 동력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 동력은 헌신적인 사회운동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뻗어나갈 수도 있고, 현명한 지도자의 판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퍼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 난민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자세가 아쉽다. 문재인 대통령만큼 많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와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헌신적인 신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든 정치 지도자는 흔치 않다. 하지만 지지율이란 바다의 조수간만과 같은 것이라, 정권 초에 밀물처럼 밀려오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썰물처럼 빠지는게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아무리 첫 밀물의 파고가 높았다 하더라도 영원히 썰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은 빠지기 마련인 지지율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는, 있을때 100% 활용해서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기본권 문제가 이제 막 현안으로 떠오르고, 국민들의 인식이 아직 고착되지 않은 지금, 대통령 본인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이미 조금씩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고 있는 신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그가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한 “변호인”을 자처한다면 우리 사회가 정의와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긴 싸움의 궤적이 완전히 변할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성장이 둔화되고 혐오와 권위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는 예외적으로 촛불 혁명에 의한 대통령 퇴진, 그리고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통해 더 발전된 민주주의로 역주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태어난지 40년이 채 안된 젊은 공화국이지만, 세상이 험해지다 보니 어느새 동아시아에 몇 남지 않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우리 정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아시아 지역, 나아가 권위주의의 부활과 싸우는 전 세계에 귀감이 될 수 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국위선양" “글로벌 코리아” 같은 것은 이제 핸드폰이나 자동차 같은 상품의 수출이 아닌, 민주주의와 기본권이라는 가치의 수출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결국은 현실 정치의 문제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갈수록 악화되고, 진보진영의 표밭인 20대 청년들의 과반수 이상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를 연료삼아 경제를 성장시키던 시절,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한 변호사라는, 화약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만큼 위험한 역할을 자처했던 인물이다. 서슬퍼런 독재정권의 폭력에 맞섰던 용기의 십분의 일이라도 되살린다면, 본인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수년 전 그의 인상적인 선거 구호였던 “사람이 먼저다”를 회상하게 된다. 정말로 정치적 이익이 아닌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결단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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