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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Aug 22. 2021

피구 시간과 결혼의 상관관계를 논하시오(1)

It all started from..


이번 글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어떤 두려움에 대한 글이다. 특히 결혼을 생각할 때, 혹은 결혼하지 않은 내 미래를 떠올렸을 때 항상 바탕이 되는 이 두려움. 그 원천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말 못 했는데... 나 남자 친구 있어. 일 년 됐어"


몇 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고백하던 순간이었다. 취업준비를 하는 내게 누가 될까 말을 못 했단다. 입안 가득 들이킨 버블티의 버블들을 채 씹지 못하고 콜록댔다. 배신감. 매일 카톡으로 모든 일상을 나누면서, 우린 학교도 같이 다니고 한 달에 몇 번이고 만나면서도 모든 이야기를 다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중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숨겨왔다고? 누가 되긴 뭐가 누가돼! 지금 이렇게 폭탄선언하는 게 누야. 대체 왜 말을 안 한 거야. 날 못 믿는 건가. 이런 생각이 서운함이 삐죽삐죽 삐져나오려 할 때 다음 감정이 찾아왔다. '두려움'이었다. 세상에서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1년간 나를 넘어서는 단짝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난 네가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인데. 넌 아닐 수도 있겠다. 두렵다. 섣불리 서운함이란 감정을 너무 많이 비쳤다간 서로 감정이 상할 것이고 단짝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그렇구나"



내가 벌벌 떨며 꺼내 든 카드는 두려움을 잘 포장한 이해였다. 사실 이런 큰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렇지만 이해해야 했다. 서운하지 않은 척해야 했다. 그 남자 친구 놈을 이겨 단짝으로서의 내 명예회복을 해야 하기에. 최대한 내 방식대로 서운함을 드러내긴 했다만, 그래도 억누른 감정이 크다.


위의 이야기는 내 인생에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내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아 신경 쓰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아 ~ 저번에 전시회 같이 갔던 그 친구?" 하면서 떠본다. 바로 다른 주제로 돌려 별 관심 없다는 뉘앙스까지 주는 고도의 스킬이다. 역시나 원래 친하게 지냈던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이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온갖 감각을 동원해 동향을 추적한다. 음. 인스타그램에 태그 된 걸 보니. 그 친구 맞네. 이런 식이랄까. (이쯤 돼서 묻는 질문 나만 이래? 그렇다면.. 병원에 가보진 않겠다. 누구나 음침하고 이상한 구석이 조금씩은 있잖아요!)


내가 굳건히 지켜온 단짝의 지위에 대해 고심하던 어느 날이었다. 인간 영감의 원천 샤워를 하던 중,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정말 쓱 지나가는 이미지였다. 바로,



피구 공과 커다란 체육관


딱 이렇게 생긴 흔한 북미의 체육관


친구가 나보다 더 친한 사람이 있다고 선언했을 때 느낀 것과 같은 종류의 두려움을 느꼈다. 기억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사이, 캐나다로 유학을 다녀왔다. 밴쿠버 근교 시골 도시의 내가 다니던 중학교, 그곳의 체육관. 다소 형식적이던 K-체육시간과 다르게  힘들었던 PE(Physical Education, 체육시간을 이렇게 부르더라) 시간이다. 선생님은 중학생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랑말랑한 공으로 하는 피구 게임인 닷지볼(dodge ball) 시켜주곤 했다. 같은  남자애가 던진 공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은 후로  닷지볼이 싫었다.


사실 그보다  끔찍한   경기 , '' 찾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명씩 짝을 짓게  다음 토스 연습을 시키고,  팀이  경기를 시키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사춘기 뜨내기 유학생에게 살갑게 다가와 주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시간 동안  둘이 나와 짝이 되기로 나설 만큼 친한 친구는 없었다. (게다가 유일한 한국인 친구는 공교롭게도 다른 반이었다! 제길) 그래서 나는 매번 나와 같은 처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안드레아스와 짝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리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다. 이방인 둘이 눈알을 굴리며 쭈뼛대고 있으면 선생님이 "둘이 하면 되겠다!" 하고 말해주신다. 그럼 짝이 되는 거였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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