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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Feb 06. 2021

나의 이란인 남편

지난 일요일은 우리 부부의 5주년 결혼기념일, 만난 지는 어느덧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절반이니, 함께 쌓은 시간들에 이제 제법 세월이란 이름을 붙여봐도 괜찮을까. 매일 서로의 맨 얼굴과 날 감정을 마주하고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 내가 멍 때리고 있을 때의 표정이라든가, 잠잘 때의 자세나 내 뒤통수를 나보다 더 많이 본 사람, 서로를 뼛속까지 다 안다고 서로가 착각하면서도, 싸움의 횟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거나 아니 영영 나와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 그런데 그 길을 내 손을 잡고 걷는 사람, 나의 남편.


우리는 6년 전 호주에서 만났다. 여기에서 살림을 차렸고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를 낳았고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오래전 남편의 나라인 이란에서 잠시 살며, 그곳의 말을 배우고 음식을 먹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지낸 적이 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호주까지 와서 이란인 남자를 만났고, 운인지 운명인지 그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 호주에서 영어보다 페르시아어(이란어)를 더 많이 쓰고 살며, 제1,2 외국어 + 18!! 까지 3개 국어를 동원하여 부부싸움까지 해야 하는 복잡 다난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물론 누구 탓도 아닌 나의 덕(?) 나의 복(!)으로 말미암아.






2016년 1월 31일 호주에서 내가 이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그 결혼식에 백 명 가까이 되는 이란 하객들이 와서 내가 부르는 이란 노래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내 결혼식 축가를 직접 불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란의 국민 가수 ‘구구쉬 گوگوش’의 ‘가리베 어셰너 غریبه آشنا’ 노래를 골랐다. 워낙 유명한 노래여서 후렴구 부분에서는 하객들 전부가 떼창을 하였다. 노랫말은 원래 시가 맞지만 ‘익숙한 낯선 사람’이란 제목의 이 노래는 내 결혼식에 진짜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غریبه آشنا
익숙하고 낯선 이여

‎تو از شهر غریب بی نشونی اومدی
당신은 아주 먼 도시에서 왔지요.
‎تو با اسب سفید مهربونی اومدی
하얀 말을 타고 친절하게 오셨지요.
‎تو از دشتهای دور و جاده های پر غبار
멀리 있는 평원과 모래로 가득한 곳에서 말이에요.
‎برای هم صدایی هم زبونی اومدی
같은 소리와 같은 언어를 위해,
‎تو از راه میرسی پر از گرد و غبار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도착했네요.
‎تموم انتظار میاد همرات بهار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چه خوبه دیدنت چه خوبه موندنت
당신을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은지요.
‎چه خوبه پاک کنم غبار و از تنت
당신의 먼지를 털어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요.
‎غریبه آشنا دوست دارم بیا
익숙하고 낯선 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منو همرات ببر به شهر عاشقا
나를 당신과 함께 동화의 나라로 데리고 가주세요.
‎بگیر دست منو تو اون دستهات
내 손을 당신의 손이 있는 곳에 놓아주세요.
‎چه خوبه سقفمون یکی باشه با هم
우리가 같은 지붕 아래 있다니 얼마나 좋은지요.
‎بمونم منتظر تا برگردی پیشم
나는 당신이 내 곁에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تو زندونم با تو من آزادم
감옥에서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자유니까요.






결혼 생활 5년, 백마를 타고 온 나의 페르시아 왕자님은 나를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 주었을까? 5주년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남편에게 올해 결혼 선물은 책상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5년 동안 남편과의 사랑과 전쟁, 치열하게 싸운 이야기를 이제 한번 써볼 때가 되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상이 집에 도착했고, 그 책상을 조립하며 우리는 또 열심히 싸웠다. 나는 아침 일출을 보며 글을 쓰겠다고 동향인 거실 한가운데 붙박이로 책상을 설치한다고 했고, 남편은 자기 집 거실 인테리어를 내가 다 망쳤다고 아주 난리를 쳤다. 어쨌든 나의 승리로 책상까지 생겼으니 이제 이 불타는 부부 전쟁을 치열하게 써볼 때가 되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실판 페르시아 왕자님, 나의 이란인 남편 이야기를 말이다.


남편 집(?) 거실 인테리어를 망친(!) 나의 붙박이 책상





(+)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겠다는 새해 다짐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지만, 올해는 [지금 여기 엄마 사람]에 이어 [나의 이란인 남편] 매거진도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귀한 시간 내어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두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이 매거진의 프롤로그 겸 작년에 썼던 글 <청개구리 부부의 80일간의 세계일주 21개월 우주여행> 글도 함께 읽어봐 주세요! 그리고 라이킷은 큰 응원과 힘이 됩니다! ^_^


https://brunch.co.kr/@mosalla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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