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맘 Feb 15. 2021

천일 아이, 이제야 어린이집 문턱을 넘으며

엄마 품을 떠나 세상 밖으로 두 번째 독립

아이가 천일이 되었다. 백일의 감격과 기쁨과는 조금 다른 천일이다. 겨우 목을 가눌까 말까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던 존재인 백일 아기와는 달리, 자기 고집이 생기고 이제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몸껏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곧 세돌이 되는 천일 아이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시간은 나날이 줄고 있지만, 여전히 졸리거나 밤에 자다 깨면 "엄마~"하고 운다. 하루하루 엄마로부터 더 멀리 더 빨리 달아나는 연습 중이지만, 그러다 또 엎어져서 무릎이 까지면 "엄마~"하고 울고 만다. 천일동안 낮이나 밤이나 아이가 수도 없이 “엄마~”하고 울어준 그 소리에, 처음 아이를 낳아 기저귀도 갈 줄 모르던 초보 엄마는 이제 제법 엄마 포스가 난다. 밖에서 다른 집 아이가 “엄마~”하며 제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뒤를 돌아보게 된다.





천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고, 남편 말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를 키웠다. 호주는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 탯줄도 자르기 전에 바로 엄마 품에 안겨준다. 신생아실이 따로 없고 엄마와 함께 24시간 모자동실을 한다. 산후조리가 무엇이요, 매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안아주고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가는 모든 일은 방금 출산한 엄마의 몫이다. 병원에서는 끼니마다 밥이라도 나왔지만, 집에 와서는 미역국도 내 손으로 끓여먹어야 했다. 아이를 겨우 재우고 밥 한술 뜨려고 하면 꼭 아이가 깨는 통에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일 년간 모유수유를 할 때는 나에게서 늘 젖비린내가 떠나질 않았는데, 하루에 한 번 샤워를 할 때도 아이가 깰까 노파심에 샤워기 물소리 너머로 아이 우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백일의 기적은 커녕, 천일의 기적도 오지 않은 아이는 아직도 밤에 통잠을 자지 못한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잠을 깨며, 새벽에 깨서 30분씩 울다 자는 날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낮잠은 커녕 낮에는 또 기운이 팔팔해서, 무조건 집 밖에 나가 하루에 3km는 뛰어다녀야 하는 에너자이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만 간단하게 먹이고 도시락을 싼다.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매일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다. 도저히 집에서는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나 혼자 감당할 수가 없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무조건 길을 나선다. 남편이 퇴근하고 올 때까지 온종일 아이와 뜀박질을 하다 집에 들어온다. 저녁을 해 먹고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재우다 늘 내가 먼저 잠이 든다.





천일을 하루 앞두고 처음으로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지내보는 아이인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다행이고 대견하면서도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남편도 평일에 회사가 쉬는 날이라 둘이서 오붓하게 뷔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를 낳은 후 천일만에 처음으로 단둘이서 보내는 시간,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평화와 여유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다른 가족 하나 없이 둘이서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참 만만치 않았다. 아이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늘 서로의 아군이자 적군이었다. 그 고되고 외로운 전쟁에서 살아남아 전우애로 더 단단해진 우리는 부모가 된 천일을 기념하며 건배를 하였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꼬물꼬물 제 몸과 마음을 만들어서 마침내 세상으로 나오던 날, 아이는 엄마로부터 첫 독립을 했다. 그리고 엄마 품에서 천일, 몸도 마음도 더 튼튼해진 아이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간다. 엄마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자신의 세상을 더 크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아이의 두 번째 독립을 축하하고 응원하며, 엄마의 천일 노고도 나 스스로 칭찬을 해준다. 지금까지 많이 애썼다고 참 잘 해냈다고. 월요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유시간이 생긴 엄마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의 독립도 꿈꾸어본다. 오늘 밤에도 아이는 자다 깨서 “엄마~”하고 울겠지만, 아직 엄마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나이이지만, 스스로 책가방 매고 학교를 가는 아이의 세 번째 독립도 고대해본다.




(+) 구정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새해 결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월요일마다 매주 글 1편씩 연재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가요 ㅠㅠ)

늘 귀한 시간 내서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과 라이킷 눌러주시는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사람 고행길의 가이드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