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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Jul 16. 2021

‘자스’라는 신조어를 아시나요?

아이가 두 돌 반쯤 되었을 때 소아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도무지 아이가 통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밤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최소 서너 번, 많게는 열 번씩 깨는 이유를 미치게 알고 싶었다. 평생 불면증이 무엇이요 그런 고통을 전혀 알지 못했고, 밤에는 절대 화장실 한번 안 가고 통잠을 자던 나였다. 임신 초기부터 수시로 뇨기가 와서 밤에 잠을 깨더니, 아이를 낳고 본격적으로 잠을 못 잔 지 어느덧 3년,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진짜로 미쳤다. 수면 교육 전문가를 3번이나 찾아갔고, 모유수유도 밤에 분유도 끊었다. 침실 온도 습도 다 맞추고 방도 바꿔보고 침대 방향도 바꿔봤다. 낮잠은 아예 안 자고 하루 3km씩 걷는 아이, 저녁엔 욕조 목욕시키고 수면제도 먹여봤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남편은 이번에는 기필코 답을 얻으리라, 제대로 된 강력한 수면제라도 처방받아 가리라 혼자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인디밴드 우주히피의 ‘하루는’이란 노래 중에 ‘하루는 죽을 것 같다가도 하루는 살만해. 하루는 미친 것 같다가도 하루는 멀쩡해’란 가사가 있다. 밤새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치고 미칠 것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이제 내 몸이 이런 수면 패턴에 적응이 된 건지 아님 아예 마쳐버린 건지 뭐 또 괜찮은 날이 있다. 미칠 것 같은 밤들과 미친 것 같은 날들의 연속, 이제 3년을 바라보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그래도 그 끝에 빛이 있지 않을까, 우리 생이 영원하지 않듯 지금 이 고생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사실 나는 별 기대가 없었다.






First, see a psychologist for an autism test.

(우선 자폐 검사를 위해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세요.)


자다가 애 우는 소리에 미쳐서 온 부모에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는 소아과 의사였다. 나와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잠 잠 잠이라고 거듭 설파했지만, 의사는 소아 정신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주며 일단 자폐 검사를 하고 자기에게 다시 오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혹 떼러 갔다가 더 큰 혹을 붙여서 온 기분이었다. 사립 병원이라 호주 의료보험을 적용해도 $130 한화로 12만 원 정도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나오며, 괜히 남편에게 “누구보고 자폐래? 돌팔이가 이란어로 뭐야?” 분풀이를 하였다. (남편도 의사도 이란 사람이다...)


집에 와서 또 미친 듯이 정보 검색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스’라는 신조어를 발견했다. ‘자폐 스펙트럼’의 줄인 말이었다. 우리가 흔히 자폐라고 하면 아예 사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특정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몰두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폐 스펙트럼은 ‘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무지개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자폐 장애의 모습이 광범위한 증상과 중증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언어, 인지, 사회성, 정서적 교류의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치료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치료의 효과도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사람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데?!






작년에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두 달 가까이 긴 락다운에 갇혀있을 무렵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밖에 산책을 하러 나갈 때마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꼬리 흔드는 아이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공설 운동장에서 공 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쪼르르 달려가 저도 그 공 한번 꼭 건드려보아야 하는 아이. 산책하다 길 가는 사람만 보면 길 가에 핀 꽃을 꺾어서 살금살금 꽃 선물을 주러 다가가는 아이.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무서워하면서도 꼭 한번 쓰담쓰담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 누구도 가르쳐준적 없는 것들을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그 모습이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 시기에 두 돌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답답했다.


그런 우리 아이가 자폐라니,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니! 한동안 내려놓았던 엄마 아빠의 걱정병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가 기차나 자동차 장난감들을 일렬로 세우며 노는 , 아직도 두발 동시 점프를 하지 못하는 , 양치질이나 머리 감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 수도꼭지 혹은 변기  내리는 것을 좋아해서 하루 수십  반복하는 ,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면 좋아하지만 같이 오래 어울려 놀지는 못하는 , 아이들 노래 교실이나 도서관에서  읽어주는 프로그램에 데려가도 같이 참여하지 못하는 , 아이의 모든 행동이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이들  조금씩 그런  아닌가, 모든 발달이 조금 늦는 아이인데 괜히  미리 걱정하는  아닐까 싶기도 했다.






- 설마설마했는데... 우리 ㅇㅇ 자스가 맞대요, 어제 진단받았어요.

- 자폐는 조기 발견과 치료가 정말 중요한데, 부모가 빨리 인정을 못해서 치료 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많대요.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면 알 수록 불어나는 걱정의 바다. 아이의 발달에 진짜 문제가 있는지, 부모의 지나친 염려가 문제는 아닌지, 비싼 돈 주고 돌팔이 의사는 왜 굳이 찾아가서 걱정병을 사 왔는지, 사립 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그보다 훨씬 비싸다는데, 그래도 이 모든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그 문을 두드려야 할지, 꼬리를 물고 무는 걱정을 하는 가운데, 락다운으로 일 년 넘게 기다린 공립 병원 언어 치료 전문가와 드디어 상담 예약을 잡았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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