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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Jul 31. 2021

How do you feel?

당신의 기분은 어때요?

공립 병원에서 아이의 언어 치료 상담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호주 의료 시스템이 원래 느리기도 하지만, 코로나 락다운까지 겹쳐서 꼬박 1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하필 초진을 앞두고 아이도 나도 그만 환절기 감기에 걸려버렸다. 병원에서는 상담 전 일주일 동안 무려 3번에 걸쳐서 확인 문자를 보내고 또 보냈다. 발열, 기침 같은 코로나 증상이 있으면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이미 1년이나 기다린 아이 언어 치료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이 예약을 취소하면 아이가 학교 갈 때쯤에나 다시 연락이 오리라. 마음이 다급해진 엄마는 일주일 내내 생강차를 달고 살며, 확인 문자에 무조건 Yes라고  답을 했다. 상담 당일 아침 목캔디 한 통을 다 빨아먹고 병원을 갔다.


이 병원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6개월 무렵 배밀이, 앉기, 기기 같은 모든 신체 발달이 느려 소아 전문 물리치료사를 만나러 왔었고, 돌에서 두 돌 무렵까지는 도무지 아이가 안 먹고 안 크는 원인과 방법을 찾기 위해 소아 전문 식이 영양사를 만나러 다녔다. 그리고 이제 세 돌 무렵 코로나 때문에 무려 1년이나 늦게 언어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물론 이 병원의 그 모든 기록들이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었지만, 언어 치료 전문가는 내 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모든 사실을 확인하였다. 작고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묵은 탄식이 속사포 랩이 되어 나오는 도중, 그만 참고 있었던 기침이 튀어나오고 멈출 줄을 몰랐다. 진료 시작 전에 코로나 증상이 보이면 상담실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기침을 멈추느라 내가 잠깐 숨을 고르는 사이, 언어 치료 상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런데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뭔가에 아주 골몰해있다. 상담실 안에는 높이가 낮은 세면대가 하나 있었는데, 아이는 물을 틀었다가 잠궜다가 하는 놀이에 푹 빠져있다. 아무리 말려보아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혼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지, 아이가 신이 날 때 하는 제스처인 얼굴 근육을 움찔거리며 양손을 팔딱팔딱 흔들고 있다. 상담가는 그런 아이의 관심을 돌려보려고 이것저것 장난감들을 꺼내와 유도하지만 소용이 없다. 더군다나 아직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상담가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심지어 아이를 부르는 이름마저 엄마와 상담가의 발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엄마는 기침 때문에 목도 타들어가지만, 아이 때문에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이를 억지로 데려와 상담가 앞에 앉히고, 그가 하는 말을 일일이 통역해준다. “ㅇㅇ야, 선생님한테 파란 공 좀 줘봐.” “ㅇㅇ야, 여기 책에서 오리 그림이 어디에 있지?” “ㅇㅇ야, ‘롤리’라고 해봐, 롤- 리- 해봐.” 상담가는 아이와 나를 번갈아보며 채점표를 들고 점수를 매긴다. 이제껏 아이의 키도 몸무게도 다른 발달들도 모두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리고 괜찮다 괜찮다 느리게 천천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또 다독였지만, 수치로 매겨지는 아이의 성장발달 점수 앞에서 엄마는 또 속이 상한다. 분명히 내 말귀를 알아들었는데도 따라 하지 않고 딴청 피우며 말을 안 듣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더 속이 터진다.






자, 이제 채점을 끝낸 상담가에게 결과를 통보받아야 할 시간, 나는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디론가 숨고 싶다. 아이가 상담가의 영어를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상담가와 직접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에 시차도 생기고 감(感)도 멀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정상 참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다. 그런데 그 말 또한 영어로 유창하게 할 자신이 없어 입을 다물고 마는 외국인 엄마는 더 풀이 죽는다. 드디어 상담가가 입을 열었다. 아이의 언어 발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언어 치료 전문가답게 발음도 억양도 속도도 어쩌면 그렇게 또박또박 정확한지, 그의 영어가 야속하게도 내 귀에 쏙쏙 꽂힌다. 게다가 외국인 엄마를 위한 배려인지 뭔지 ‘significantly delayed (상당히 지연된)’란 말을 계속 반복하며 내 귀를 후벼 팠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폐 스펙트럼도 확실히 보인다고 했다.


How do you feel?

(당신의 기분은 어때요?)


방금까지 아이의 언어 발달이 심각하게 늦다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까지 보인다고 아픈 말만 골라서 해대더니, 뜬금없이 나의 기분을 묻는 상담가. 그런데 그 말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제야 그는 호주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위로의 말을 시작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그리고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고...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다시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튼다. 오늘도 아이는 낙제점을 받고 나는 문제아 엄마가 되어 울고 싶은데, 아이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게 마냥 신기한지 혼자 아주 신이 났다. 지구 상에서 다른 존재와 비교하는 개체는 인간이 유일하다고 했던가. 그래 괜찮다 느리게 천천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주문을 또다시 외워본다.






How do you feel?  기분이 어떠냐고?  어려운 질문 앞에  마음이 건강하고 여유로운 엄마가 되리라 다짐도 해본다.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아이와  한번  맞추고 아이와  한마디  나누자고,  똑똑하고 강한 엄마가 되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병원을 나오니 거짓말처럼 기침이 멈췄다. 갖가지 이유로 걱정병을 달고 사는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다른 무엇보다 부모가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우리 아이들도 건강할  있다고, 더군다나 코로나 시기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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