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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Mar 06. 2023

아, 잘 살다 갑니다

저의 소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나의 소원을 듣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냐며 반문하기도 했고, 또 어느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여태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냐면서 말이죠.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니 결코 저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말하는 행복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소원입니다.


제가 말하는 행복은 불안하지 않은 삶을 뜻합니다. 매일이 행복하고 눈물겹고 웃음만 나오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불안하지 않는 행복을 말합니다. 어떠한 큰 기쁨이 갑작스레 다가와 방방 뛰며 웃고 울어보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그냥 아침 햇살에 개운하게 일어나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다정한 사람의 품에 걱정 없이 잠드는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지도 못했던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의 삶이 불행했음에 안타까워하거나 혹은 불행이 끝남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 잘 살다 갑니다'하고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소원합니다. 그래서 저의 소원은 참 막연하고 어렵습니다.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과 몇 번의 배신, 대학 병원을 홀로 다니며 밥 먹는 것조차 아까웠던 불안하고 가여웠던 나의 20대. 그 비극을 끊어내기 위해 나는 나의 숨을 끊어내는 방법을 찾곤 했습니다.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고 어떠한 노랫말이나 어여쁜 것들을 보아도 그 안에서 나는 죽음의 안식을 원했습니다. 그러던 저는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그리고 나의 어여쁜 고양이의 작은 온기로 그것을 이겨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첫 '버킷 리스트'가 뒤늦게 생겨난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 쉽게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제야 나는 내가 가여워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힘든 만큼 행복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고 작고 가녀린 손을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무대의 조명 아래서 눈을 감고 노래하고 싶었고 언젠가는 약간 따스한 빛을 띠는 종이에 나의 말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하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그 순간에 눈을 감더라도 나의 삶에 미소 한 번 띄우며 그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저는 분명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잘 살다 갑니다. 남은 인생 다들 행복하게 사십시오. 저는 먼저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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