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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Feb 26. 2023

내가 입을 다문 이유

언제부터일까. 나는 언제부터 살아온 저 먼 이야기를 내뱉는 게 더 쉬워지고, 코 앞의 감정을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마 말의 무게를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너밖에 없다는 말, 내 인생에 네가 1순위라는 말. 얼마나 듣는 이로 하여금 설레면서도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말인가.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상대에게는 기대감과 동시에 마음을 의지하는 말이 된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모르고 뱉는 이들을 아무 안전장치 없이 믿었다가 배신감에 뒤돌아선 그들의 벽에 거세게 부딪쳤다.


그들과 똑같이 되는 것이 무서워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달콤한 말들을 뱉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나 역시 그들의 안전장치를 풀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내가 그들처럼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스스로 무섭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말들과 동시에 나의 감정을 뱉는 것도 어려워졌다. 나의 서운함이 결국은 서로의 감정소모가 되는 것이 싫었다. 내가 싫다고 말하는 것이 상대를 멀어지게 할까 봐 걱정하는 나 자신도 싫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게 되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 나 하나만 입 다물면 된다.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일만큼 가치 있으면서도 가장 복잡한 일은 없다. 사람은 정해진 공식이 없으니까. 다만 우리는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적어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오류가 생기지 않게 그나마 가장 쉬운 공식들을 대입해 본다. 그러나 그 공식마저도 어떤 이들에게는 0이 될 수도, 어떤 이들에게는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숫자가 나올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오류가 날 만한 것이라면 그 어떤 쉬운 공식조차 최대한 아끼고 아껴둔다. 사랑해, 좋아해, 서운해, 난 지금 너 덕분에 행복해, 난 지금 너 때문에 불행해.


가끔은 그 말들을 아끼기 위하여 나는 스스로 동굴에 들어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공식을 입력할 타이밍이 맞는가? 아님 여전히 아껴두는 것이 맞는가? 반대로 생각한다. 나는 상대가 말한 공식을 0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정답임을 인정할 것인가?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내뱉는 말들의 무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가볍게 뱉어도 되는 말은 하나도 없다. 상대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얼마나 오래 기억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매일 뱉는 '엄마'란 단어도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는 내가 처음으로 뱉은 그 순간이 그들이 죽기 전까지 기억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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