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밤낮을 누빈다. 낮과 밤, 더움과 추움, 배부름과 배고픔 상관없이 온 시간을 누비고 다닌다. 곁에서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이제 그만 슬퍼하고 싶은데, 슬픔은 오랜 굳은살처럼 떼어내기 쉽지가 않다. 이미 한 몸이다. 어쩌면 나는 슬픔에 중독되어 있는 걸지도, 혹은 슬픔을 떼버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슬픔이 사라지면 기대해야 하니까.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인생을 살다 한 번쯤 무너져 내리는 일이 있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좋은 일이 있으려 그러나 보다, 그러나 그 말에 기대감을 갖기도 전에 세상은 나를 주저앉혔다. 일어나려 하면 또다시, 걸어보려 하면 또다시, 그렇게 자꾸만 내 무릎을 모래에 처박았다. 기대를 가질수록 더 아팠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늘 최악만 생각했다. 더 상처받을 바에 차라리 최악을 대비하는 고통이 낫겠다 싶었다.
실제로 나는 늘 조금씩 괴로운 사람이 되었다. 최악을 상상하다 보면 인생이 그렇게 된다. 그래도 무언가 힘든 일이 발생하고 나면 덜 상처 입었다.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었다. 덜 주저앉으면 일어나는 게 쉽다. 그래서 늘 쭈그려 걷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모래 속에 파묻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조금 오래 걸었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걸었다. 의심이 들었다. 내 삶이 이렇게 평화로울리 없어. 늘 힘겹게 걷다 넘어졌던 내가 이번엔 꽤나 오래, 그리고 편히 걸었다. 삶이 괴로운 사람들은 평화가 의심스럽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 아닌 불행해야 하는 사람처럼 만든다. 아차, 깨달은 순간 나는 불행해야 하는 사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적어도 이제는 평화라는 것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슬픔은 나의 밤과 낮을 누볐다. 아직 덜 아문 나의 나무 위로 서리가 소복이 내려앉아 녹지 않았다. 언젠가 난란한 햇빛을 쬐면 서리마저 녹아버릴 그 봄날을 기약하며, 나의 슬픔을 조금 더 자유로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