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별 Mar 13. 2021

발리는 잘못이 없다

처음 꾸따의 호텔에 도착했을때 나는 반 기절 상태였다. 익숙하면 익숙한거고 낯설은거면 낯선건데 익숙한듯 낯선 느낌의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항 가기 3시간 전까지 술을 들이부었으니 발리에 도착해서도 내 간은 여전히 해독중이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밤 수영을 하겠다는 계획은 애초에 없었던것처럼 저녁 먹고 환전하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게 발리에서의 첫날이었다. 발리를 왜 갔냐면 유일(?)하게 건기인 한국 근처의 바닷가였기때문이다. 다이빙 라이센스를 따러 8월쯤 여행을 하고 싶었고 그때 건기인 곳은 인도네시아밖에 없길래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대차게 직항으로 표를 사두었다. 7시간이라는 애매한  비행 시간, 인도도 아니고 인도네시아에 루피도 아니고 루피아라는 통화를 쓰는 정말 애매한 나라였다.

비행기의 항로를 모니터로 보면서 적도를 넘는걸 알았음에도 인도네시아가 남반구라는 사실은 발리 옆에 위치한 작은 섬, 길리에서 깨달았다. 현아가 엄청 더울거라 그랬는데 한낮에도 그리 뜨겁지 않은 햇빛과 저녁에 부는 선선한 바람, 물에 들어가기엔 춥기까지한 한밤중. 왜 날씨가 좋지? 라고 자문하다가 깨달았다. 아 맞다 남반구를 넘었지! 계절이 반대지! 여기 겨울이구나! 겨울이라고 해도 적도의 겨울은 극동지방의 그것과는 몹시 달라 그저 날씨 좋은 한여름에 불과했지만 습하지 않고 쪄죽을거 같은 느낌이 안 든다는게 신선했다. 내가 남반구에 있다니! 그동안 북반구에만 있어서 적도를 지나 남반구에 내려온게 너무 신기했다. 7시간이나 비행기를 탔음에도 한국과의 시차는 1시간밖에 안난다는것도. 길리에서의 7일은 대부분 다이빙에 몰두하는 시간이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새벽에 눈이 떠져서 아무도 없는 숙소의 수영장 의자에 앉아 멍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12시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물론 다이빙이 끝나면 물처럼 맥주를 마셨지만 이상하게 전혀 취하지 않고 몸이 쭉쭉 알콜을 흡수해서 날려버리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타투샵에 걸어놓은 디파짓, 미리 결제 해놓은 리턴 보트와 셔틀 교통비, 숙소 예약비용까지 다 날리고 뭐에 홀린 사람처럼 우붓으로 갔다. 같은 날 우붓으로 떠나는 사람이 우붓의 여러 클래스를 알려줬는데 바틱에 확 사로잡혀버렸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조용한 곳에서 앉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게 나의 여행이었던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빠져버렸다. 그 길로 여행사에 가서 새로운 배표를 예약하고 바로 짐을 싸서 체크아웃 한 뒤 선착장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예정에도 없었던 우붓, 생각하지도 못한 바틱 클래스 (바틱은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기법을 뜻한다) 그리고 충동적인 행동이 날려먹은 돈을 생각하며 여행 진짜 몰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서 발리 여행 전면 취소를 고민했던 나는 우붓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 돌아다녔다. 치앙마이 같은듯 같지 않은 그 애매함도 익숙해지니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실 발리에 있는 동안 초반에는 계속 태국이랑 발리를 비교하며 투덜댔다. 새로운 경험을 기존의 경험과 비교하며 익숙한것을 우위에 두는 오류를 범한것이다. 지나고 나니 적응의 과정이었던것 같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마냥 새로웠던 환경이라 적응할 필요조차 없었는데 나에게 익숙한듯 그렇지 않은 발리에서는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와중에도 꼴불견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서 나도 모르게 태국과의 비교가 새어 나오면 읍 하고 입을 다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행 왜 왔지? 같은 근원적인 물음은 알아서 잘 싸매놨다. 해봤자 답이 안나오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태국을 내 집 드나들듯이 가는것처럼 인도네시아, 특히 발리에 자주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것 같았다. 나는 아마도 그러지 않겠지만 이곳은 분명히 매력적인 곳이다. 내 마음에는 다른 곳이 크게 자리하는것뿐 발리는 잘못이 없었다. 웃긴건 비행기를 타러 가는 마지막 날에 일정 변경을 엄청나게 알아봤다는것이다. 여행사에 연락해 이틀 뒤 자리 있나요. 없습니다. 삼일 뒤 자리 있나요.없습니다. 그럼 그 다음날은요. 있습니다 42만원. 네 오늘 비행기 탈게요.

머리채 잡혀 끌려가듯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공항에서는 한시간동안 내가 발권할 카운터도 알려주지 않았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 지나치게 일찍 온것이다.  일찍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정도로 우붓이 좋았는가, 발리가 좋았는가 하면 대답하기 어려울것 같다. 대신 마음속이 아주 살짝 뒤집어졌다 다시 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만족스러웠다. 싫어하는  할수 있게 됐고 한국에서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고 관계에 있어서 가벼워지고. 외로움도 여기에서라면 괜찮은것처럼 느껴지는 여행특수를 실로 오랜만에 겪는 참으로도 애매한 여행이었다. 여행에 미치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다짐한게 있어 빚을 내서라도 두달에 한번꼴로 여행을 가고 있다.  모든 여행에서의 내가 전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신에게 질린 내가 나를 받아들일  있는 돈들고 힘든 방법을 찾아낸 덕에 남반구의 발리까지 가봤다. 앞으로 계획된 여행에서의 내가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발리에서의  만큼은 됐으면 좋겠다. 나쁘지 않았다, 발리. (2019)

작가의 이전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배달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