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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Mar 17. 2021

단 한번의 인생 떡볶이

지금은 마포 평생 학습관이라 불리는 도서관과 수영장이 있는 건물은 옛날엔 그냥 마포도서관으로 불렸다. 초등학교때부터 방학숙제 하러 드나든 곳이라 지하에서 나는 수영장 소독약 냄새, 그리고 거기서 파는 끓인 라면의 맛 같은건 내게 진한 향수로 남아있다. 덩달아 그 근처가 점점 번화가로 변하고 각종 상점이 들고 나는걸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참 홍대에서 합주도 하고 클럽 공연을 하며 홍대앞의 골목을 구석 구석 누비고 다닐때였다. 버블티 가게였던 마포도서관 앞의 작은 공간이 떡볶이 가게로 변한것이다. 의자가 다섯개정도 있었나.   이상은 절대 들어갈  없는 아주 협소한 가게였다. 더군다나  앞을 지나는 동안 손님이 있는걸 한번도 보질 못했다. 아저씨는 의자에 앉아 졸고 계셨고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안에서 떡은 퉁퉁 불은  살금 살금 끓고 있었다. 나와 친구 현아는 세상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다. 일주일에 떡볶이를 여덟번 먹는다고 우스개 소리를 할만큼 좋아해서 홍대 앞의 떡볶이 가게 지도도 만들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작은 가게는 선뜻 들어갈  없었다. 아저씨의 단잠을 깨우는게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저기요, 부르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운 아저씨가 부랴부랴 담은 떡볶이를 먹는것도 쉽진 않은 일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떡볶이는 한참   좋아하던 쌀떡이었고,  자세히 얘기 하면 짧뚱한 쌀떡이라  입에 넣기  좋은 사이즈였다. 양념은 그다지 빨갛지 않은 주황색 계열의 달고  맛이 강해 보이는 떡볶이였다.  만큼 길과 주방의 사이가 멀지 않았고 아저씨는 항상 문을 활짝 열은  졸고 계셨다.  네다섯번째  앞을 지나갈  였나. 처음으로 아저씨가 졸지 않고 계셨다. 심지어  먹고 계산하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 여기를 우리만 궁금해 한곳이 아니구나. 어쩌면 떡볶이의 고수일지도 몰라. 다른데서 이전해서 단골들이 몰려들고 그나마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우리가 지나간걸지도 몰라. 떡볶이에서 희망이 보였다. 주문을 하고 앉아서 가게를 둘러봤다. 왼쪽에 의자 세개, 오른쪽에 두개. 간판도 없는 떡볶이 집을 땅값도 비싼  곳에 차린 아저씨의 저의가 뭘까. 고민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떡볶이는 내가 좋아하는 살짝 불은 상태로 나왔다.  역시 맵지 않고 달고  초등학교 앞의 떡볶이 맛이었다. 떡볶이 냄새에 얹혀  불어오는 노스텔지어의 향이 나를 초등학교 3학년때로 데려갔다. 그렇게나 맛있고 자주 먹었지만 언젠가 스윽 없어진 파출소 앞의 떡볶이 맛과 흡사했다. ! 여기 자주 오자! 맛과 양과  모두를 만족시킨 실로 오랜만에 보는 떡볶이였다. 아저씨는 과할 정도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질수 없는 우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연신 맛있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맛있는 떡볶이가 사람에게 주는 행복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것이다. 워낙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어 쌀떡파, 밀떡파, 고추장파, 고추가루파 등 선호도도 다양하고 추구하는 맛도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그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완벽에 가까운 떡볶이를 먹었다. 네다섯번을 지나치고 여섯번째에 겨우. 여기는 매일 와야 한다, 매일 올 것이다 라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상하게 동선이 맞질 않아 몇 주를 못 가고 거기 가자, 이번엔 꼭 가자 라고 의기투합해서 날까지 잡아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쉬는 날이겠지 하고 또 다시 찾아간 날에도 문은 닫혀 있였다. 몇번의 헛걸음 뒤에야 아예 가게를 접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 종류의 맛있는 떡볶이는 우리가 만든 떡볶이 지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막 떡볶이 지도를 업데이트 하려던 참이었는데, 다음에 갈 때는 정말 맛있다고 말씀드리자고 했는데, 단 한번의 인생 떡볶이였다.

그 뒤로 가끔 상상한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곤히 자는 아저씨를 깨우는 상상을. 그랬다면 문을 닫지 않으셨을까. 우리만 아는 맛집이 아니라 여기 저기 소문 내고 추천하고 포장까지 해가면 계속 영업을 하셨을까. 떡볶이 장사엔 전혀 소질이 없어보이는 아저씨는 어디로 가셨을까. 가게에서 졸때엔 무슨 꿈을 꾸셨을까. 그 뒤로 맛있어 보이는 집에는 그냥 들어가 버린다. 카드로 계산하기 미안한 가격이면 아예 왕창 사서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준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쉬움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그게 떡볶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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