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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Mar 19. 2021

입이 없는 사람


처음엔 수다쟁이였던것 같다. 얼마나 말을 많이 했냐면, 어렸을적 말이 너무 많아 짜증이  엄마한테 혼나기까지 했단다. 그냥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엉뚱하면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 개그를 치는 일이 즐거웠다. 어느날 갑자기 우울이 찾아왔다.  이상 사람들과 이야기하는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개그를 치면 결국 내가 바보가  뿐이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음을 들키지 않으려면 바보가 되는게 편했다. 우울은  커지고 나는  우스운 바보가 됐다. 예민하면서도 바보 같은 나였다. 점점 말이 줄었다. 속내를 이야기 하면 후회가 커져 말수는 줄어갔고 어느샌가  들어주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친구들의 사소하거나 중대한 비밀 같은것들, 정말로 비밀로 해야하는 얘기들이 내게 들어왔고 자연스레 나는 입을 닫게 되었다.


 어느날 꿈을 꿨다. 입이 없어졌다. 눈 코 귀는 전부 다 멀쩡한데 입만 없어진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답답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이제 네 얘기를 해봐" 라고 해도 말할 수 있는 입이 없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좋은 꿈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실컷 하다가도 상대방이 얘기 없이 듣기만 하면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듣기만 하고  얘기는 꺼내지 않는게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을때쯤  아주 오래된 친구로부터 "나는 니가 무슨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라는 얘기를 들었다. 적잖이 아픈 상처가 됐다.  뒤로 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사이사이 꺼내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을 채워 는다. 아무래도 좋을 말들, 혹은 너라서 하는 말인데- 시작하는, 사실은 모두에게 했던 이야깃거리로 쓰기 좋을 법한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불행들. 사람은 불행을 교환하며 친밀감을 상승시키는  같다. 그동안  나의 불행이 너무 크고 버거워서 얘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거대한 불행의 잔가지쯤은 얘기해도 나쁘지 않았다. 나누어도 좋을 불행은 내게도 있었다.

입이 점점 줄어드는 일은 그렇게 중단됐다. 그렇지만 언젠가  입은 없어질거라고 생각한다. 굳게 믿고 있다. 말할  있는 잔가지들이 전부  떨어지면 그때에는 정말  말이 없어질테고   없는 입은 점점 작아져 결국 사라질것이다. 입은 있는데 속에 있는 말을 하지  하는것보다는 애초에 입이 없어서 아무말도 안하는 사람이 훨씬 행복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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