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 오랫동안 사람들한테 불려왔고 사용해 온 이름이다. 어쩌다 가끔 “정말 이름처럼 생기셨네요” 라는 말도 듣는다. 이름과 이미지가 잘 어울리나보다. 그런데 사실은 난 박별이 아니라 ‘박샛별’이었다. 출생신고를 하며 부모님이 그 자리에서 만든 이름. 작명가나 돌림자 같은건 개입도 못한 충동적인 이름이었다. ‘샛별’은 금성의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해가 지고 가장 먼저 뜨는 작은 별. TV에서는 주로 신인가수를 소개할 때 “가요계의 샛별!” 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교가에도 들어갔다. ‘빛나는 샛별~’ 이 대목을 부를 때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장난스러움이 가득 묻어난 표정으로. 그 당시만 해도 한글 이름이 많이 없을때라 특이한 이름, 예쁜 이름이라며 내가 지은 이름도 아닌데 칭찬도 많이 듣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박샛별 이전에 ‘박지희’가 있었다. 친가의 여자 아이들은 끝자리에 ‘희’ 돌림자를 썼다. 족보에도 안 올려줄거면서 이름은 맞춰서 지어야 했다더라. 그래서 수희,정희,민희,상희...들 중 막내였던 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지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샛별’이라는 이름으로 신고 했지만 시골만 가면 어른들은 내가 한참 자랐을때도 지희라고 불렀다. 성이 ‘박’인 바람에 박지희 박지 박쥐가 되어서 나는 박쥐였다. 박쥐라니, 어린 마음에도 듣기 싫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입학하고 제일 먼저 친해진 친구 이름도 지희였어서 우리는 친해질 운명이었다니 어쨌느니 했던 기억이 있다. 박지희 라는 이름이 가진 유일하게 즐거웠던 기억이다.
이름이 샛별이라고 별이 그려진 티셔츠나 귀걸이 같은것들을 모았다. 딱히 원치 않았던 이름이지만 자꾸 불리니까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나보다. 별이 들어가는 이름을 가졌다고 별 무늬 옷을 입었더니 재수없다고 유난스럽다는 동네 언니들의 타박도 있었다. 그래도 니 생각 나서 샀어라며 별모양 귀걸이를 선물해준 친구도 있었다. 이것들 말고도 이름에 관한 여러 일화가 있는데, 사람에게 있어 이름 자체가 그렇게나 중요한건지 아니면 흔치 않은 이름이라서 그런건지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평등을 위해 호칭을 없애고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공간이라 다들 새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별 말고 다른 이름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신 부르기 쉽게 ‘벼리’라고 지었다. 그 때부터 나는 오랜 시간 ‘벼리’였다. 박샛별과 비슷하지만 좀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어감이었다. 원래 이름은 어렸을때부터 발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쌭뼐”로 발음되는 이름이 부담스럽고 답답하게 들렸다. ‘샛’만 없어도 좋을텐데. 그래서인지 나를 별이로 부르는 막내이모가 제일 좋았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별아, 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 대안학교에 입학하고 ‘별’을 풀어쓴 벼리(혹은 별이)가 완전한 내 이름이 되었다. 주민등록등본에서나 샛별을 썼고 아주 어렸을적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만이 나를 샛별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됐다.
법원에 갔다. 개명 신청 사유는 “누가 샛별아 라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였고 증거로 박별이란 이름이 써진 택배송장을 제출했다. 몇 주 만에 개명 승인이 났고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모든곳의 이름을 박별로 바꿨다. 박샛별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이름이라면, 박별은 내가 선택한 이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