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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May 03. 2021

묻지도 않은 근황과 안부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이 곳에 그동안 써 둔 글이 아닌, 가장 최근의 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냐면 오늘 하루 종일 읽은 글이 서간문이었거든요.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서간문이라니, 한번도 시도해본적 없고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아주 작은방에서부터 시작된 온갖 공상과 상상, 잡다한 망상은 들어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실은 어렸을 적 아무도 없는 작은방에서 저는 늘 특별 게스트 였습니다. 토크쇼에 초청된 주인공이었어요. 혼자 호스트와 게스트를 번갈아 가며 질문을 주고 받았습니다. 다행히 중얼거리지는 않았고 머릿속으로만 했네요. 저와 비슷한 또래라면 우리가 어렸을적 미국식 토크쇼가 유행했다는것을 알것입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쟈니윤쇼가 있구요. 주병진쇼도 있네요. 그 이후로 김혜수의 플러스플러스유 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그걸 아주 좋아했어요. 김혜수 언니의 세련된 말투와 재치,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게스트에 대한 배려 같은것들이 ‘아 나도 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보통 다들 이런가요? 제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저와 팀을 같이 하고 있는 김현아뿐인데 그도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공통점이었죠. 저와 현아 둘 다 자아가 아주 비대했던것 같습니다. 여튼 저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계속 인터뷰이와 함께 대화를 나눴어요. 주로 성공한 제가 보낸 어린시절에 대해서 대담이 진행됐죠. 혼자 얘기하는것보다는 상대가 있는게 더 재밌으니 이런식의 머릿속 대화는 커서도 계속 되어 오늘날까지도 끝 없는 인터뷰를 홀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터뷰는 아니지만 서간과 비슷하게 누구도 묻지 않은 안부를 전할까 해요. 딱히 수신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라고 하면 비대한 자아가 더욱 더 비대해지니 그냥 혼자 하던 인터뷰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쓸게요.

우리가 예상했던것 그 이상으로 역병의 재난이 계속 되면서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을것이고요. 저에게는, 딱히 역병의 최전방에 있지 않은 직종의 우리들에게는 무료함과 괴로움이 적당히 섞인 날들의 반복이겠죠. 그 와중에 저는 큰 변화를 몇 가지 겪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체중감량입니다. 6개월동안 10키로가 빠졌어요. 아주 급하게 찐 살이에요. 우울증을 겪고 있고 약을 복용한다는것은 그 간의 글들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셨다면 하여간 그러합니다. 주변에 우울증을 겪고 10키로 이상 살이 찐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증 환자는 그보다 더 많지만요. 어쨌든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독하게 살을 뺐고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과 맞는 새 옷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저는요 처음엔 제가 살이 쪘다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평생 개말라 인간으로 살았거든요. 그것은 제가 입이 아주 짧기 때문일것이고 저체중으로 태어나서이기도 할것이고 먹는것보다 자는것의 즐거움이 더 커서이기도 할것입니다. 랄라스윗을 하면서부턴 눈에 보이는것보다 사물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덕분에 생긴것과 사진,영상은 좀 다르게 나온다는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적당한 체중을 찾고 너무 말라보이거나 너무 쪄보이지 않도록 체중관리를 하긴 했습니다만. 그 적당했던 숫자와 제가 올라간 체중계의 숫자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숫자들이 일주일을 마다하고 갱신됐습니다. 별로 먹은것도 없고 폭식 같은것도 안했는데? 하지만 배달의 민족 VVVIP로 등극하면서 알게됐죠. 먹기는 오지게 많이 먹었구나. 그거 알죠. 대부분의 경우 술은 마실수록 잘 마시게 된다는것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것을 먹는것에 대입해 훌륭한 진리를 찾았습니다. 음식도 먹을수록 더 잘 먹게 된다. 입 짧은 박별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엽떡 절반 정도는 가볍게 먹었습니다. 뭔가가 저를 홀린듯 배달을 미친듯이 시켜댔어요. 이것에 관해선 아래에 관련글이 있으니 안보신분들은 가셔서 하트 눌러주세요. 여튼간에 저는 처음엔 우울증 약의 부작용인줄 알았어요. 검색해보니 제가 먹는 약의 부작용중에 식욕증진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스크롤을 더 내리니 식욕부진도 있었어요. 정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건지. 수상쩍은 마음으로 병원에 가서 주치의에게 얘기했습니다. 난생 처음 급격히 살이 찌고 있으니 식욕억제 성분이 들어간 약으로 처방해달라. 그리고 그 다음주에 같은 약을 두 배 늘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약 때문은 아닌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약을 이 이상은 늘릴 수 없다고요. 병원에서 주는 약은 저의 식욕을 막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갚아나간 카드값 덕분에 한도는 충분했고 서교동은 배달의 천국이었죠. 배달을 시켜놓고 반도 안 먹고 버리기 일수였어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더라구요. 불안이었어요. 어쩌면 소통이나 이해였을수도 있어요. 밑 빠진 독처럼 전부 다 빠져나갔어요. 약으로 간신히 버텨내던 시간들이었고요. 그러다보니 약의 가짓수와 용량이 늘어났죠. 주치의는 항상 최고치를 계산해서 약을 처방해줬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준비해서 바로 그 경계선에 있는 처방이라고 하면서요. 여기서 약을 더 늘리는것은 위법이다 라고 하더라구요. 법이 수호하는 선상에서 저에겐 상비약이 하루에 세봉지씩 지급됐는데 인데놀이란 약과 자나팜이라는 약이에요. 둘 다 신경안정제이고 인데놀은 독주회나 중요한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불안으로부터 도망칠수 있는 약이고 자나팜도 비슷한데 얘는 먹으면 잠이 와요. 한번에 두 봉지 이상 복용 금지라는 처방을 듣고도 여섯봉지를 먹은 다음 공연한적도 있어요. 제가 믿고 있는건 그 때는 오로지 약뿐이었어요. 오남용을 하면 안됐지만 했죠 뭐. 그런 판단이 가능 했다면 애초에 약도 안먹었겠구요. 그러다보니 몇 번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는데 주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가는 길에 몇번 부딪히고 넘어지고 앞 뒤로 고꾸라지고 그랬어요. 그러다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뒤통수를 세게 박았는데 네 다행히 살아있네요. 각도의 중요성. 뭐 그런건가봐요.

체중감량을 얘기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어쩔수 없어요. 사람은 최고치나 정점 같은걸 찍으면 확실히 뭔가가 바뀌더라구요. 저의 경우 한심함의 최고치였어요. 어떤날은 몇분 간격으로 두봉지 세봉지씩 약을 털어넣었구요. 거기에 술까지 합세해 기억이 자주 끊어졌어요. 그래도 병원 가서는 솔직히 말했죠. 이만큼 약을 먹고 이만큼 술을 마셨다고. 자해성 오남용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어요. 아마도 저의 간은 멀쩡하지 않을것 같아요. 간수치가 높아졌을거라고 하더라구요. 뭐가 됐든 나를 벌주고 싶고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었나봐요. 슬프죠. 네 슬펐어요. 그래서 약을 먹고 또 먹고 주치의는 한숨만 쉬고. 전날 먹은 술에 찌들어서 병원에 가기도 하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구요. 그러다가 변한건 저의 체중과 외형만이 아니란것을 정말 어느날 갑자기 알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대화 중 지나가듯 얘기하더라구요. 박별씨, 생긴건 되게 빠릿빠릿하게 생겼는데 뭔가 굉장히 느리네요. 대답을 할 때도 말이 바로 안나오고 한참을 머뭇거리구요. 와, 와, 와! 대단히 기분 나쁠수 있는 말이었지만 이 한마디가 뒤통수를 가격하고 갈비뼈를 발골하며 저의 무언가를 바꿔놨어요. 정확히는 바꾸고 싶어졌어요. 원래의 나.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러진 않았다. 똘똘한 나. 몇 개 안되는 장점 중 하나였던 순발력, 재치, 그런것들 있잖아요. 얘기를 시작하려면 말부터 더듬고 어휘력이라면 한글에 한해서 뒤쳐지지 않는다 생각했던 내가 단어가 생각이 안나 한참을 머릿속을 뒤져 겨우 찾아내고. 처참했죠. 이게 그때의 나였어요. 제가 그렇게 변했더라구요. 물론 고용량의 약 때문이었고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나아지지 않는 우울증 환자를 도우려면 차라리 그렇게 느리고 쳐지고 잠만 자게 하거나 입원을 권유하는 방법 같은것들 밖에 없는거 같아요. 두 차례의 입원을 거절한 저는 고용량의 우울증 및 불안장애, 공황장애 약을 먹었고 점점 느려지고 둔해지고 생각같은것을 안하게 되었어요. 그냥 반복되는 먹고 자고의 일상과 무기력함에 익숙해지던 참이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박별씨, 로 시작되는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나는 사람의 그 말이 저를 후두려 팬거에요. 많이 울었어요. 살찌고 우울증에 정신을 거의 놓고사는 박별이 박별을 잡아 먹었더라구요. 저는 저한테 잡아 먹혀버렸어요. 그것도 은연중에 아주 어눌한 방법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간에 지금 이 상태로는 더는 살고 싶지 않았어요. 예민해서 맘 고생을 하더라도 그게 나았어요. 빠릿하고, 똘똘하고, 당돌하고, 날 서있는 나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다음 진료때 말했어요. 단약을 하고 싶다,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주치의는 적잖이 놀라시더라구요. 아니? 왜? 갑자기? 내가 그동안 수도 없이 복싱을 하라 뜨개질을 하라 수영을 하라 달리기를 하라 입원을 하라 검사를 받아보자 얘기해도 들어먹지 않더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라는 표정으로요. 죄송하지만 너무나 친절한 선생님의 얘기는 저에겐 들어먹히지 않았네요. 의문을 가장한 비난같은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고 얘기했어요. 어리둥절한 선생님은 그, 그러자며 본인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가능할수도 있겠다며 약의 종류와 용량들을 조금씩 바꿔나갔어요. 세봉지씩 지급되던 비상약도 두봉지로 줄었고 가짓수는 그대로지만 약들의 색깔과 숫자는 변하더라구요. 단약은 불가능하단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약을 줄이겠다는 저의 의지는 맹렬해서 빠른 시간에 최저용량으로 줄였어요. 의식적으로 순발력을 되찾고자 했고 누워있는 시간도 줄였어요. 마침 처리 해야 될 일들이 많았던 때라 여기 저기 밖에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어버버 거리는 횟수도 줄어들고 위트 있고 재치 넘치는 나 (찡긋) 로 돌아간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동시에 아주 신기하게 식욕이란것이 제 몸을 떠나갔어요. 하루 한끼는 어제 먹다 남은 배달 음식, 한끼는 아메리카노. 이렇게 먹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했어요. 뭐가 먹고 싶냐는 친구들의 물음에도 응 너가 먹고싶은거. ㅇㅋㅇㅋ. 진짜로 뭐든 괜찮았어요. 내 앞에 뭐가 있든 선뜻 손이 안가더라구요. 정확히 귀찮았어요. 너무 너무 귀찮아서 죽지 않을만큼 먹었더니 카드값이 훅훅 줄어들고 살도 훅훅 빠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운동을 하고 보조제를 먹고 난리부르스를 쳐도 움직이지도 않던 숫자가 귀찮음 때문에 줄어들더니 지금 최고를 찍었던 체중에서 정확히 10키로가 빠졌네요. 아 길고 긴 얘기였습니다. 애석하게도 한참 살 찌던 시기에 알게 된 사람이 많아서 살 빠진 제 모습에 놀라는 사람도 많았네요. 어떻게 뺐냐고 물어들 보는데 이 지난한 과정을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해하던 차에 여기다 이렇게 풀어봅니다.

정리하자면, 제가 살이 찌고 빠진것은 병과 약 때문이라고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살이 빠지고 원래의 나로 돌아왔는데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원래의 내가 뭐 어때서. 살은 왜 그렇게 빼고 싶었을까. 그래도 가벼워지니 좋네. 같은 생각들이에요. 누군가의 한마디에 왜 그렇게 큰 변화가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어요. 무릇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운명일수도 있구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시죠? 인생은 타이밍. 그거 같아요.

문제는 변화가 찾아온 정신과는 다르게 몸은 최악의 상태를 달리고 있었어요. 신경계 검사를 했는데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때보다 모든것이 다 나빠져있었어요. 거의 3년을 꼬박 약을 먹었는데.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예민도는 엄청 높고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어요. 이 와중에 약을 줄이고 버티는게 대단하다고 그래프가 말해주는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이상의 약은 줄일 수 없고 이 정도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세 달동안 같은 양의 약을 먹었어요. 괜찮더라구요. 이제 잠도 잘 자는 것 같아서 수면제중 하나의 용량을 반으로 줄였어요.



지금 다시 신경계 검사를 하면 뭔가가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빨갛기만 하던 그래프가 초록색으로 변했을수도 있구요. 왜냐면 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고 역병에 적응하게 되면서 불안이 줄어들었음을 느끼거든요. 그래도 완전히 나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건지 때때로 공황도 겪고 어떤날은 머릿속으로 동시에 수 많은 제가 인터뷰와 글을 써내려가고 그래요. 그 덕에 잠 한숨 못자고 뜬 눈으로 하루 종일 불안해하기도 하구요. 이제는 좀 안정을 찾고 싶은데도 그게 안되니까 간간히 이럴때마다 술로 이겨내요. 과음을 하면 그 다음 하루를 날리고 그 다음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아 내가 그랬던가 싶으면서 고통이 흐릿해져요. 숙취로 공황발작을 이겨낸다. 멍청하죠.

계속 아픈 얘기만 하면 미안하니까 다른 안부도 전할게요. 정자세로 서있는게 언제부턴가 힘들어져서 코어 근육에 대해 찾아다니다 헬스장까지 갔어요. 그렇게 주치의가 외치던 운동을 결국엔 하게 되더라구요. 대신 살 빼려고 하는 달리기나 사이클보다 근력운동 위주로 하고 있어요. 사실은 중3때 체력장이라고, 요즘 사람들은 모를거 같은데 아무튼 그거에서 제가 학교 하키팀 빼고 상위 0.1%였어요. 1급을 넘어서 특급이 나왔거든요. 다행히 잘 할수 있는 것들만 시켜서 점수가 잘 나왔어요. 특히 1초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했던 오래매달리기는 30초를 하고도 가뿐하게 내려왔어요. 30초가 만점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안해도 되지만 누군가 시키면 턱이 나갈때까지 이 악물고 할 수 있을거 같았거든요. 그 때 기분으로 근력운동을 하고 있어요. 농담으로 나의 목표는 3대 500치는거다. 라고 했지만 이게 정확히 뭔지는 사실 모르고. 기립근이 생기는걸 실시간으로 느낀다는지, 쇳덩이에 꽂는 막대기를 한 칸 한 칸 내릴수록 느껴지는 짜릿함이라던지 그런것들이 참 즐거운 요즘이에요. 결론적으로는 살려고 시작한 운동이지만 살고자 하는것도, 운동을 하는것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약을 줄여 나가고 몸에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근육들을 만들고 그 근육들이 저를 일으켜 세워 고통이 줄어든 삶을 살고 싶어요. 불행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요. 원망스러운것들 투성이지만 극복하려고 해요. 어느날 갑자기 제가 몰타로 어학연수를 떠날수도 있어요. 갑자기 배우 지망생이 되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닐수도 있구요. 펑크밴드 보컬이 되어서 사람 하나 없는 클럽에서 노래를 할 수도 있고요. 어느 하나 쉽사리 시작은 못하겠지만 이것들의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이 생겨서요.

사람 인생  알다가도 모르죠. 제가 가진 운명이 어쨌든 간에 저는 살아남았고 아직도 괴로운 꿈을 많이 꾸지만,  다음엔  얘기를 할까 해요. 지독하게 같은 꿈을 반복하고 있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역병이 세상을  덮은  대재앙 같은 동시대를 사는 여러분들께 장황하고 정리도 되지 않은 쓸데 없는 안부를 전하려니 막상 망설여지네요.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후회한 적은 아직  번도 없지만 이번엔 어쩌면 후회를 하게  수도 있고요. 이거 되게 장황한 tmi잖아요.  읽고 그래서 ? 라고  사람도 있을것 같고 그렇지만 쏟아지는 생각을 글로 늘어놓는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아요. 괜찮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네요. 저의 스트레스 해소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투머치한 얘기들을 함께 해주신 분들.  분들께 저는  있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어요. 고되지만 고된 과정들을   지나니까 이렇게 글도   있고. 좋네요. 사실  좋진 않아요. 그치만 좋네요 라고 타이핑을   있을 정도는 됐으니까요. 이렇게 보니까  고무적인   편을 쓰게 됐네요. 일단 올려놓고 수정을 하는 타입이라 내용이 이래 저래 바뀔수도 있고 추가될수도 있지만요. 지금  순간의 저는 이러합니다.

제 근황은 이러합니다만 내일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와 같이 내일도 흘려 보내거나 어쩌면 갑자기 정신이 나가 헛짓거리를 할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쏟아내면 후련함과 동시에 후회도 밀려오거든요. 한참을 사람들과 정신 없이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끼는 그 감정이요. 그게 참 여러사람 마음을 좀 먹어요. 우리 안그래도 되는데. 그쵸.

이 글을 읽는분들의 내일은 어떨까요. 저는 요즘 불교에 관심이 생겼는데 또 죽음에 관련해서는 힌두교가 맞는거 같고 확실히 잡생각이 많긴 하네요. 아무튼지간에 기도를 자주 올리거든요 부처님한테. 종교를 초월해서 님들이 무슨 신을 믿던간에 당신의 내일은 온전히 지나가기를, 운이 좋다면 제법 웃을 수 있기를 그저 그 정도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 느끼기를. 지내온 시간을 되짚어가며 기도할게요. 쓸데도 없고 어디 올릴만한데도 마땅치 않은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아니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안부는 좀 더 건강한 박별로 인사 드릴게요. 여러분들도 아프지 마시구요. 그럼 여기까지 할게요. 김혜수의 플러스 플러스유에 게스트로 나온 박별이었습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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