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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현 Jul 31. 2020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살고 있다

카그라스 증후군 / 캡그래스 증후군

데자뷰와 자메뷰 효과


우리는 흔히 '데자뷰'를 느낀다.

데자뷰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일을 마치 우리가 겪은 일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반대로,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를 자메뷰(jamais vu) 현상이라고 한다.



문득 글자의 생김새가 참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가'라는 글자는 왜 '가'라고 생겼을까?


오늘 소개할 '카그라스 증후군'은 익숙한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끼는 증후군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Capgras syndrome)


우리는 가끔 잘 안다고 생각하던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카그라스 증후군은 낯섬을 넘어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느끼는 것을 이야기한다.


시각을 포함한 오감과 기억 모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카그라스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변장을 한 것이든, 외계인이 변신한 모습이든, 최신 기술로 똑같은 모양의 로봇을 만들어낸 것이든, 기발한 망상으로 그 사람의 존재를 대체해버린다.


실제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74세의 기혼여성인 D 여사는 다른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후 재진을 위해 우리 병원을 방문하였다.

처음에 방문한 병원에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똑같이 생긴 전혀 다른 타인으로 바꿔치기되었다고 믿는 비정상적인 정신병으로 진단받은 바 있었다. 그녀는 그 사기꾼과 동침하기를 거부하고 밤에는 문을 걸어잠궜고, 아들에게 총기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그녀를 강제적으로 입원시키려는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때로 환자는 남편을 오래전에 사망한 그녀의 아버지라 믿기도 하였다. 그녀는 다른 가족은 명확하게 구별하였으나 유독 남편만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 Passer and Warnock, 1991
"28살의 다이앤(Diane)은 23살에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녀를 담당했던 의사에 따르면 처음 그녀는 담당의가 그녀의 장기에 항구적인 손상을 입혀 그녀가 임신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증상은 신경이완제를 통한 치료를 통해 차도를 보였으나 퇴원 이후 그녀가 치료를 거부하면서 악화되었다. 8개월후 그녀가 재입원한 시점에서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다이앤은 누군가가 자신과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똑같이 닮은 복제(그녀의 이것을 screen이라고 불렀다)를 만들었는데 자신은 착한 면(good one)과 나쁜 면(evil one)의 두개의 복제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카그라스 증후군을 동반한 정신분열증을 진단받았다"

— Sinkman, 2008


뇌와 관련된 질환은 언제나 슬프다.

최대한 담백하게 꾹꾹 눌러담아 썼음에도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었을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병이 생기는 것일까?



카그라스 망상과 연관된 질환들


카그라스 증후군은 독립된 병이라기보다 망상의 일종에 가깝다.

망상을 느끼는 대표적인 질환인 조현병(구 정신분열증, schizophrenia)에서도 당연히 카그라스 망상이 일어나기 쉽다.


기억과 현실감에 영향을 주는 퇴행성 뇌질환, 알츠하이머 병도 카그라스 망상과 연관이 있다.



인상적인 기억이 오래 남는다.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들은 대개 우리가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들이다.

극심한 슬픔과 고통, 분노를 느낀 사건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을 이성적인 영역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감정적인 영역이다.

감정과 연계되지 않은 기억은 쉽게 마모되고 도태되어 사라진다.


변연계. 기억 중추인 해마(hippocampus)와 원초적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amygdala)는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할머니' 세포?


'할머니 세포'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제롬 레트빈(Jerome Lettvin)이라는 유명한 신경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1969년 MIT에서 강연을 하던 중, 가상의 천재 신경외과 의사 '아카키 아카키비치(Akakhi Akakhievitch)'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머니와 관련된 나쁜 기억들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의 머리를 열고, 뇌에서 뉴런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기억과 관련된 뉴런들을 모두 제거받은 그 환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천재 신경외과 의사 '아카키 아카키비치'는 다음 목표인 '할머니 세포'를 찾는 연구에 들어갔다.


반 농담으로 시작된 이 개념은 뇌과학의 발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할머니 세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할머니'를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특정 뇌 부위가 있음은 fMRI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할머니 세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뇌 기능의 핵심은 연결(네트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인식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있음은 뚜렷해보인다.


라마 찬드란의 가설


유명한 뇌과학자, 라마 찬드란은 카그라스 증후군은 안면인식을 담당하는 하부 측두엽과 대뇌 변연계(특히 편도체) 사이의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실제로 환자들은 의식적인 안면인식은 가능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적인 연결이 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마치 치과치료를 받고 물을 마실 때의 어색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특정 인물에 대해 감정이 마취된 사람들이라고 할까.


이 가설이 아직까지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함께 보면 좋을 자료들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act=dispMediaListArticles&tag=%ED%95%A0%EB%A8%B8%EB%8B%88%EC%84%B8%ED%8F%AC&document_srl=52891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6%BC%EA%B5%B4-%EC%9D%B8%EC%8B%9D%ED%95%98%EB%8A%94-%EC%8B%A0%EA%B2%BD%EC%84%B8%ED%8F%AC-%EB%94%B0%EB%9D%BC-%EC%9E%88%EB%8B%A4/?cat=128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14213/1/phil_thought_v27_297.pdf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82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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