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간 준비 많이 했지?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만나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한 케이스이다. 누가 누구를 "꼬시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려 연애를 하게 되었고, 연애 2년차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소통'으로 꼽았다. 서로가 속에 감춰둔 이야기가 없기로, 비밀이 없기로.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자연히 다툼도 있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건전한 소통을 했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은근히 연애 초기부터 해왔던 이야기는 육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갖고 싶어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건강한 허니문 베이비를 출산하게 되었다.
우리는 나름 진지하게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했으며,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나서도 10달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출산 이후부터는 그러한 고민과 준비들이 아무 소용없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받곤 한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부모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성숙했는지,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있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다가온다.
좀 커서 나오면 안되냐?
인간의 아기는 연약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송아지 같은 경우에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네 발로 서서 걸을 수 있고 갓 태어난 강아지는 어미의 젖을 스스로 찾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아기는 태어난 순간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기본적인 반사작용 외에는 참 무력하다. 아이를 처음 받아든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출산 전의 주된 고민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었다면, 출산 직후부터는 아이의 생존이 목표가 된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특히 혼자서 생존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뱃 속에서 충분히 커서 나오면 아기도 좋고 엄마도 좋을텐데. 가장 그럴싸한 가설은 직립보행과 두뇌 발달이라는 인간의 진화적 특수성에 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며 두 손의 자유를 얻었다.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더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고, 불을 사용하면서부터는 두뇌의 폭발적인 진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는 직립보행은 불리한 점이 많다. 직립보행이 만든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디스크(추간판 탈출증)와 치질이다. 또한 출산에 있어서도 불리함이 있다.
똑바로 선 자세는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불리한 자세다. 임신 중에는 태아의 무게, 양수의 무게, 태반의 무게가 합쳐져서 체중부하가 더욱 늘어난다. 호르몬 변화로 몸도 붓게 된다. 그래서 임신 중 대표적인 증상이 요통이다.
요는 아기가 무작정 커지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기가 조금 덜 자랐더라도, 모체의 보호를 위해 분만이 일어나야 한다. 물리적으로 몸이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산부인과의 딜레마(obstetrical dilemma)'라는 것이 있다. 출생시 아이가 지나오는 길을 '산도(産道)'라고 한다. 산도가 3차원적으로 넓으면 출산이 비교적 아프지 않고 편할 것이다. 그러나 출산하지 않을 때는 산도가 좁은 것이 편하다. 대표적으로 산도가 너무 넓으면 걸을 때 불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일상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데에는 산도가 좁은 것이 유리하다.
유인원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뇌는 계속 발달해왔고 머리 크기 또한 점점 커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더 큰 사람이 진화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쉽게도..
정리하자면
① 직립 보행은 구조적으로 무게 부하에 약하고
② 골반의 크기가 점차 넓어졌으나
③ 두뇌의 발달에 따른 두개골 크기가 증가했다.
그 결과, 아이가 조금은 불완전한, 한없이 여리고 약한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가설은 이러한 '약한 태아'가 인간의 사회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약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생활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대해 던바의 수로 유명한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그러나 진화 과정이라는 것이 어차피 적응과 우연 사이의 줄타기가 아니던가. 영장류의 약한 태아는 필연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종의 생존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이게 준비가 가능한 일이야?
우리는 결혼 준비서부터 도합 2년 정도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임신 이후 10개월 간을 각종 육아정보와 육아템을 준비하며 보냈다. 이보다 더 오래 만나고 오래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데 완벽하게 준비한 후에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고? 세상은 변수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육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 무한한 변수에 따른 매뉴얼 따위는 절대 만들 수 없으며, 육아와 가사 노동의 완전한 50:50의 분배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해를 봐야 한다. 그것을 우리 말로는 '배려'라고 한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할 것은 서로를 충분히 배려하는 마음가짐이다.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깔끔한 이론대로 흘러만간다면 참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다른 모든 일들은 경력이 중요하다. 업계 베테랑과 보조업무를 맡을 신입으로 팀을 구성하면 맡기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런데 부모는 베테랑이 있을 수가 없다. 출산과 육아는 연습을 할 수 없으며 많은 아이를 낳아봐야 세 명 이상을 키우기도 어렵고 모든 아이는 서로 다른 아이이기 때문에 특정한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인정해야할 것은 완벽한 육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의 인생을 돌이켜보자. 완벽했는가? 완벽했다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완벽을 고집하는 순간 내 자식과 배우자의 인생이 고달파질 수 있다. 나는 육아는 곧 가정을 꾸리는 것이고, 가정의 제 1 목표는 행복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되겠지만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육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아를 시작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했건, 출산을 마치면 육아를 시작하게 된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육아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일단 아기를 키워야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젖 물리고 똥 치우고 옷 갈아입히고 잠 재우는 그 육아이다. 맞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젖을 주거나 분유를 먹이고, 대소변을 보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리면 재워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이 든다고 할까?
그 이유는 일단 사람 아기의 불완전성에 있다. 아기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잠을 잘 때 눈을 감아야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순간이 있다. 그럴때는 가제 손수건 등을 이용해서 눈을 감겨주면 잠을 자기도 한다. 소화관이 짧고 곧아 세워두지 않으면 곧잘 토를 하거나 배앓이를 한다. 그래서 아기들은 젖을 먹고나면 어른이 꼭 충분한 시간을 안고 트림을 시켜줘야 한다. 이런 세세한 일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까지는 밤에 잠을 못 잔다. 이것은 예민한 아기들만 그런 것이 아닌데, 일단은 소화관이 짧기 때문이다. 젖을 먹는 텀이 2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푹 잠을 자더라도 2시간에 한번은 깨서 밥을 줘야한다. 그러니 초기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엄마의 고생이 압도적이다. 더구나 건강한 상태도 아니고 출산을 마친 이후의 산모가 매일 밤 제대로 된 수면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 뿐이랴. 호르몬 영향으로 느슨해진 관절로 아이를 하루종일 안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모든 아빠들은 최소한 집에 있는 동안이라도 아기를 최대한 많이 안아줘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아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이라도 많이 해주도록 하자. 부모가 편해야 아이도 편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인데, 일련의 업무들은 결코 순서대로 내가 편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아기는 젖을 빨다 코가 막혀 패닉에 빠져 울기도 하고, 기저귀를 가는 중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그 상태로 뒤집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음도 많다. 울음에 대응하지 않고 방치하는 방법도 있으나, 첫째로 아이의 올바른 발달성장을 위해 추천하지 않으며 둘째로 울고 있는 아이를 그대로 두고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부모니까..
내가 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이 분야이다. 어차피 실무적인 부분은 아이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직접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익게 된다. 내 아이 기저귀 가는 법에 대해 100일 이상을 키운 부모보다 더한 전문가는 없다. 즉, 100일 이전까지는 유튜브 채널이나 산후조리원, 부모님을 통해 어느정도 방법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출산 전에 미리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기본을 익혀두면 좋다.
장기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하는 문제는 짧게는 성인이 되는 20년, 길게는 부모가 죽고난 뒤 아이의 평생까지 염두에 둔 화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는가? 이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구체화해 볼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1.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이다.
내 자식이라고 내 소유물로 생각하면 안된다. 아이는 부모를 닮게 마련이지만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심지어 내 앞에 어린 시절의 나를 가져다놓더라도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아이를 존중해야한다. 부모의 이상이 아이의 현실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된다.
2.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다.
나는 은근히 많은 아이들을 접해보았다. 친척 아이들을 돌본 경험이 있고, 대학생 시절에는 다년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보았고, 직업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와 아이들을 진료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끝에 체감한 지극히 단순한 원리는 자식들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이 우리 아이는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본다고 푸념하는 식이다. 아이를 고치려 하지 말고 부모 스스로가 바뀌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변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받아들이고 변화를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이에게 내 꿈을 강요할 수 있다. 나는 이 형태의 부모가 방치형 부모보다 더욱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독립하기 전까지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 우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내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훈수를 좋아하게 되어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인생 설계를 해줄 것인가? "아빠가 의사니까 너도 아빠 따라서 Y대 의대를 나오고 A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아빠와 같은 과로 와서 아빠 병원을 물려 받거라." 식의 인생설계도 나쁘지 않다. 살짝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인생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이 있으면 거기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우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가정문제로 변질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구체적인 장기 계획은 계획이 아니라 희망 수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롭다.
추상적인 가치를 위주로 브레인스토밍식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나는 내 아이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노력에 대한 성취를 잘 얻었으면 좋겠고, 리더십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추상적인 주제들에 대해 나의 잡학지식과 짧은 생각을 버무려 글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