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튜브 도전기
구독자 1,000명이 되면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다.
물론 기뻤다.
그러나, 시청시간 4,000시간의 벽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
(4,000시간이 넘어야 수익창출이 된다)
처음 휴대폰 카메라로 녹화를 시작할 때, 이 세계가 이토록 심오하고 복잡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영상보다는 음향이 더 어려웠다.
한 명이 녹음할 때와 두 명이 녹음할 때는 모든 것이 달랐다.
오인페와 비디오 믹서를 장만하고, 다이내믹 마이크와 콘덴서 마이크를 구하고
조명을 구입하고, 크로마키 천을 사고
하나하나 장비가 늘어났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위력에 놀랐다.
중국이 없었다면 나의 유튜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온갖 장비를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장비를 갖추는 데 있어서 정말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불확실성"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A라는 장비와 B라는 장비가 제대로 연동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설명을 찾아봐도, 블로그를 뒤져봐도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직접 사서 맞추어 보고 작동시켜 봐야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이템을 사고 다시 그것과 연결할 아이템을 주문했을 때
물건 도착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조급증이 났다.
중국에서 와야 하니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렸고
고통도 그만큼 길어졌다.
진짜 문제는 '나'였다
사실 유튜브를 하면서 정말 어려웠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바로 '나'였다.
불특정 다수인에게 나의 얼굴과 음성을 내어놓음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대박이 나서 길거리 사람들이 알아볼까 걱정(?)했던 때도 있었다.
터무니없는 걱정이었다. 내가 만든 영상의 조회수가 100회가 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튜브 생태계의 냉혹한 현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난 다음에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가 함께 모여 다투는 느낌이었다.
부족했고, 부끄러웠고, 나빴던 과거의 '나'가 무슨 낯짝으로 세상에 얼굴을 들이미냐고 책망했다.
미래의 '나'는 지금 그렇게 말해 놓고 나중에 어떻게 주어 담을 것이냐고 한심해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앞에서 현재의 '나'는 주눅 들었고, 그들 앞에서 끝없는 자기 검열을 해야 했다.
자연히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신비로운 만남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세 명의 '나'는 얼추 화해에 다다랐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최악은 아님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아니 다가올지 아닐지도 모를 미래에게까지 검열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자의식 과잉'의 발로였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주제 영역이 대중의 관심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언젠가 대박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직면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즐기면서
묵묵히 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