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맘 Dec 26. 2021

아이가 아플 때 간호사 엄마가 더 무기력한 이유.

엄마가 간호사라 미안해

여기는 소아과 외래주사 및 입원대기실.

혈관 찾아 주사맞느라 고생했던 티가 역력한 퉁퉁부은 눈..

집에서 보는 아들은 저런 느낌이 아닌데,

저 병원 침대에 놓여있으니 새삼 쪼꼬맣게 보였고, 그런 이유로 더 안쓰러웠다.




곧 두돌인 아들은 어느 날 열이나기 시작했고

동네 소아과에서 후두염이란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 먹고있었다.

평소에도 또래 아이들보다 자주 열이나긴 했지만, 어린이집을 다니기도 했으니

또 감기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느꼈던게 아니라 굳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노력)했던 것..

엄마의 마음은 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기가 열이나고 아픈데 대수롭지 않은 엄마가 어딨겠어.

남들이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거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빨리 낫길 바라며 애써 버텨보는거지.


아무튼 이틀을 그렇게 약을 먹고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설상가상 변비때문에 애 낳는것 마냥 고생하는 아기..

아무리 힘 줘도 불편한 건 가시질 않고

어찌 할 바를 몰라 서글픈 표정을 하며 우는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내가 그냥 버텨본다고 되는게 아니다 싶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열나는 건 남은 약을 더 먹으면 떨어질거라 생각했고

당장 불편해보이는 변비라도 해소하게끔 도와주고 싶었었다.

저녁 시간까지 진료를 봐주는 소아병원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됐고

상황을 듣고 좀 더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엉엉 우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향했다.




열이 제일 많이 올랐을 때가 39도였고 지금은 변비로 고생해서 관장하고싶어 왔다 말했더니

일단은 상태파악을 위해 엑스레이와 피검사 오더가 내려진다.

방사선실은 아무래도 낯선 기계와 소리와 빛들 때문에 아이를 더 두렵게 하는 듯 했다.

차갑고 딱딱한 곳에 누우라고 하면 성인인 나도 불쾌한 느낌인데

왜 그래야하는지도 모른 채 강제로 눕혀지는게 얼마나 무섭고 괴로웠을까 싶다.


엑스레이 결과는 (엄마의 촉으로 안봐도뻔했다.)변이 가득 찼다며

관장해야 할 상태라 했고 , 바로 관장을 했고, 생각보다 쉽게 변이 (잔뜩)나왔다.


그 와중에 내가 이 아이를 출산할 때 난생 처음 했던 관장의 느낌이 떠올랐다.

불쾌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10분을 참으랬는데

내용물이 들어가자마자 '난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구보다빠르게 실패를 예감했고

그래도 참아보려 항문에 힘주는데 웬걸 애꿎은 다리만 후들거리는 걸 보고있자니

뭐랄까 (내 그 자세만 본다면 )참 비참했었는데...

아무튼 그랬던 내 관장경험은 아들을 향한 걱정의 정도를 크게 올리는데 한 몫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생각보다 아이가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뿐더러

오히려 금방 변이 나와 얼굴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는 거다. 누구랄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간호사,원장님,남편,당연히 우리 자몽이...




문제는 피검사였다.

언젠가 응급실 간호사인 대학동기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아가 혈관은 한번씩 찾아보나?'


혹시나 애가 아프면 혈관 빨리 찾게 미리좀 봐두는게 안좋겠냐는거다.

대수롭지 않게 웃고 넘겼는데 진짜 그랬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과 식욕부진으로 탈수가 된 상태의 자몽이혈관은

안그래도 통통한 살 속에 묻혀 도대체가 보여지기는 커녕 촉진되는 것 조차도 어려워보였다.

두번의 간호사 체인지, 5번의 시도 끝에 혈관주사에 성공..


아기엄마들의 경험을 많이 들어서였을까(10번을 찔렸다던가,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던가.)

간호사인 내 경험 덕에(?) 그 간호사들의 상황도 이해돼서 그랬을까.

아무튼 다섯번이면 선방한거지..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그치만 혈액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우는 아기를 달랜다며 자장가를 불러주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하다가,

그냥 막 목이 칵 막혀서 더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내가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몰라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아기가 아파하는데 주사를 몇번 찌르냐며 있는 마음 솔직히 다 쏟아냈다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덜 미안했을까?

나도 당신들과 같은 마음으로 일해봤으니 다 안다는 식으로

괜히 너그러운 척 사람 좋은 척 허세나 부리고 아기마음 대변해주지 않았던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 없던 나 대신, 남편이 검사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들어갔고

염증수치가 정상의 20배가 넘으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한편으론 어중떠중 먹는 약으로만 치료해서 느리게 낫는 것보다

확실히 집중치료하는 것이 덜 불안할 것 같아 차라리 잘 됐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망할)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한명씩만 가능했고,

나는 나이트킵, 그러니까 밤에만 근무하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낮에는 내가, 밤에는 남편이 교대로 간병할 수 있었다.

내가 상근직간호사라거나 3교대 간호사가 아니라는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맞벌이하는 부모들은 아이 아플 때 참 곤욕이다.



입원병동으로 올라갔을 땐 이미 늦은 밤..

한창 울고 자다 일어난 우리 아들은 다시 쉽게 잠들지 못했고,

나는 아이가 내는 소음이 걱정돼 다인실 병실 밖을 나와 탕비실에 앉혔다.


테이프로 칭칭 감겨진 발과 그 끝에 달린 줄이 불편한지

'빼~빼~' 하고

발에 있는 괴물체를 빼달라며 눈맞춘다.


'안돼~ 자몽이 힘나라고 도와주는거야.'

이해가 될 지 모르는 아이에게 설명해준다.

엄마의 역할이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이 날을 대비해 간호사가 되었던가. 엄마이자 간호사로서 아이에게 더 친근히, 더 살뜰히, 더 따뜻하게 대하려 다짐해본다.


생애 첫 입원한 아기의 어떤 조용한 외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