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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맘 Jan 04. 2022

이과의사 vs 문과의사

의사에게서 배우는 엄마의 태도

"아까 자몽이 회진 왔는데, 밥을 그렇게 안 먹던 애가 갑자기 혼자서 숟가락으로 밥을 국에 말아서 엄청 잘 떠먹는 거야. 원장님이 그거 보더니 갑자기 픽-! 웃으면서 '어이구 기분 좋아 보이네. 밥 잘~먹네요!.' 이러시더라?"


 남편과 교대할 때 내가 말했다.

 

괜히 말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때 기분이 진짜 좋았기 때문에 그 일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자몽이의 입맛이 돌아온 사실도 좋지만, 원장님의 그 스몰토크 하나가 기분을 들뜨게 한 것도 있다.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우울하게도 한다.




 아기 엄마들은 적어도 세 곳 이상, 집 주변에 있는 소아과 의사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이들을 천사처럼 대하는 세상 친절한 원장님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원장님까지... 내 빅데이터 속에 죽-줄 세워져 있다. 자몽이의 잦은 병치레 덕(?)이다.


 이번에 자몽이를 담당한 의사 선생님은 사실 뭐랄까. 크게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진료시간이 짧다거나, 걱정스러운 엄마의 이야기를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하여 무안하게 만드는 식의 진료도 아니다. 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확실한 정보를 주는 아주 이과스러운(?) 스타일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절하지만 애매한 정보를 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진료보다는 조금은 무뚝뚝해도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진료를 더 선호한다. 나도 의료인이지만 내 아이가 아플 때는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의 회진은 조금 달랐다. 원장님은 평소 모습과 달리 잠깐 미소를 띠며 짧게 한마디 했다.  더 이상 피검사라던지, 엑스레이 같은 객관적 증상을 두고 진단 내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몽이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비교적 주관적인 말이었다. 나는 그래서 더 마음이 동요되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반전 매력이랄까? 혹은, 두부 같은 사람이 갑자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면 심쿵하게 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자몽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 봐주셨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그에게 진료받을 땐 사실 조금 잠이 올 정도였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영~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본분을 다했고, 열 달 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일도 딱히 없었다. 그저 느긋하고 순한 '두부'같았다. '이분의 학창 시절은 도대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반전이 있었다.


 출산할 당시 자몽이가 산도를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다른 엄마들도 그랬듯이 나는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먼저 출산한 친구는 그 당시 간호사에게 반말까지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데... 그건 좀 너무했다며 웃었던 내가 친구와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하필 그때 의사 선생님은 다른 산모를 보느라 오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을 모셔올까, 아니면 더 기다려보겠냐'는 질문에 나는 당장! 누구라도 데려오라고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렇게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도 나는 다음에 오는 장면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초록 가운을 휘리릭~! 하고 환복 하며 성큼성큼 들어오는 의사 선생님의 뒤에 후광이 비쳤다.

그는 아기가 잘 보이도록 단숨에 자리를 잡고 단단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자 이제, 산모분 다리 아래로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됩니다.

 제가 잘 볼 테니 이제 걱정 마세요."


내가 들었던 그의 목소리 중 가장 크고 선명했다. 그 압도되는 목소리와 태도가 휘몰아치던 나의 마음을 잠잠하게 안정시켰다. 동시에 새해 첫날에 뜨는 해처럼 힘이 솟았다. 정신 못 차리는 나를 한 번에 일으킨 그는, 누구보다도 멋진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었다.


 내가 단번에 신뢰하게 만든 이 두 의사들의 태도는 정확하고 확실했다. 오랜 기간 공부해오고 경험해왔던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아픈 아기 엄마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달래며, 완곡한 문장으로 안심시키는 면모도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자가 어떤 개인적 감정이나 휘둘림 없이 일관성을 유지했을 때, 상대가 오히려 안심이 되는 상황도 분명 있다. 아마도 급성기 환자가 많은 의료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친정 엄마와 통화하는 나를 보던 자몽이가, 문득 일어나 다가와 안긴다. 피검사 수치가 비정상임을 이야기하며 걱정하던 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전이시키고 있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환자가 의료진의 작은 태도와 말투 하나로도 무너지기도 일어나기도 하듯, 자몽이도 자신을 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는 과연 그에게 확신의 신뢰를 주는 이과 감성 엄마였을까?


 한 칸짜리 방에 갇혀 뭐 하나 확실할 것 없는 곳에서 여느 때와 같이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고, 차분하게 반응하며, 아기가 불안해할 때 함께 호들갑 떨지 않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은 꽤. 아니,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더라. 하지만 엄마는 사실 의사보다 더 의사다운 조건으로 괴로운 상황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기를 가장 잘 알며 미세한 변화도 바로 캐치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면밀히 살피던 그의 엄마뿐이다. 본인 아기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평소에도 열심히 그를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엄마가 그의 가장 훌륭한 담당 주치의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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