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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맘 Jan 24. 2022

청소가 단순해지는 환경 만들기

단순해야 쉽게 시작하지.

#내가 끝까지 해 낼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활동.

#내 의지대로 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

나는 너무 싫었다. 청소가.

정리정돈 자체를 잘 못하는 성격이다. 단순히 썼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면 어지럽혀지지 않을 텐데, 어떤 심리인지 굳이 그곳에 두질 않고 쓴 곳에 그대로 두는 게 나의 희한한 고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심리가 무엇인지 오은영 박사님께 여쭙고 싶을 정도로,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마음이다. 하여간 그게 나는 참 불편하고 부끄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내 성향이야.' 라며 애써 이런 모습들을 외면했다.


심지어 결혼 후 36형, 그러니까 실평수 12평 정도 되는 집에 남편과 아기가 함께 살게 되었으니 어땠을까. 조금만 어지럽혀져도 대환장 파티가 된 모습이었다. 나 혼자 살 때는 이게 큰일인지 몰랐었지. 근데 그 정돈되지 못한 환경이 아기에겐 위험이 되고, 한 땐 남이었던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살려니 밥풀 한 조각, 썼던 물티슈들, 겹겹이 쌓인 그릇들 등 신경 쓰이는 게 참 많다. 심지어 내 흔적뿐 아니라 남편의 신었던 양말이나 입었던 속옷도 바닥에 있는 날이면 부부 사이에서도 위험한 언쟁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됨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물론 남편은 나보다 더 깔끔하다. 청소도 잘한다.) 게다가 아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아기의 흔적들도 범위를 점점 넓혀나간다. 하루 두 번 이상 청소를 해 줘야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그렇듯이)


한편 나는 역설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바로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습관도 없으면서 한편으론 정돈되어있지 않은 모습이 너무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주변이 어지러우면 의욕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 뭔가 본격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비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집에 물건이 없으면 정리할 것도 줄고, 청소도 단순해질 것 같아서였다. 단순히 청소가 귀찮아서 물건을 제거한 거다. 머리 말리기 귀찮아서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 같은 행위랄까. 둘 다 무모해 보이지만 효과는 있는 가성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랬더니 진짜 이젠 청소하는 게 한결 덜 부담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시간이 확 줄었으니까.

또, 물건들을 많이 비웠더니 공간 자체가 단순해져서 보기에 복잡한 느낌도 확 줄었다. 가장 중요한 건, 수납공간이 여유로워진 것이다. 그래서 물건에 집주소를 정해주기 시작했다.

마치 양치하고 난 칫솔을 아무런 고민 없이 칫솔걸이에 넣는 것처럼 제자리가 있는 물건을 아무런 고민 없이 넣게끔 하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물건을 쓰고 나면 다음번엔 이 물건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끔 배치를 다르게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제자리에 두지 않고 괜히 그냥 근처에 둬봤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확실한 자리를 정해놓다 보니 정말로 칫솔이 1초의 딜레이 없이 칫솔걸이에 걸리듯, 쓰였던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이 쉬워졌다. 제때 되돌아가지 않더라도 괜찮다. 청소를 시작하기만 하면 널브러진 물건들을 고민 없이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 청소는 머리 쓰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청소하는 데까지 효율 따져가며 머리 쓰고 싶지 않다.


청소가 쉬워지니 이젠 우쭐 해질 정도다. 뭐랄까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오버스러운 표현일까 싶지만 실제로 따져보니 진짜 그럴 법 한 이야기라 굳이 정정하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청소는 내가 끝까지 해 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활동이다. 어떤 '활동'이라 함은, 다이어트라던가, 그림을 완성시킨다던가, 유튜브 영상을 완성시킨다던가.. 어쨌든 얼마간의 시간을 들여 어떤 행동을 유지하고 결국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건데,  사실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근데 그러한 것들 중에 가장 가성비 좋게 무언가 완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청소인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보통 루틴 청소가 한 시간 안에는 끝나니 말이다. 청소는 창의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잘했고 못했고도 없다. 그저 묵묵히 해내기만 하면 된다.


세상엔 내 의지대로 되는 게 몇 없다.

누군가는 먹은 만큼 찌고 안 먹은 만큼 빠지는 다이어트만큼 단순하고 솔직하고 투명한 게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 썩 공감하지 않는다. 배가 너무 고픈데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앞에 있던 빵이 내 뱃속에 숨어있고.. 뭐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물론 내경험) 내 배 아파 낳은 내 아기도 내 맘대로 다루질 못하는데, 사실 의지대로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청소는 아니다.


처음엔 귀찮더라도 그냥 눈앞에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기만 해도 어느새 방바닥의 모양이 단순해지고, 넓혀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단순히 내 관절 하나하나를 움직이기만 하는데도 내 앞의 상황이 변화되고 보기에 말끔해지는 게 신기하다.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를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일단 이불을 개고, 쓰레기를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하면 다음이 보이고 그다음이 보인다.


음식물과 수저가 한데 뒤섞인 싱크대 앞에 서도, 그릇 하나만 들어 거품을 내다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광나는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10분밖에 지나있지 않고, 멀끔해진 싱크대 중앙 하수구로 쿠루 룩~남은 물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쾌감이 밀려온다. 한 때 너무 귀찮고 괴로웠던 청소가 이렇게 스트레스 풀릴 일이었나! 스트레스받을 땐 설거지를 한다는 누군가의 도저히 이해 못 할 취미를 이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매일 청소시간이 두렵지 않다.

솔직히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가만히 있다가 빵 먹고 싶은 것처럼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 질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더 미루고 미루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니라, 이젠 먹으면 증상이 줄어드는 감기약 같은 활동이 됐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활기를 기대하며 시작하게 되는 하나의 솔루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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