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볼륨으로 살아가기
어렸을 때부터 나는 꽤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의 예민함' 때문에 사소한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민한 거야?" "너 닮아서 저렇게 예민한 거 아냐?"
(글쎄요. 두 분 중에 한 명 닮지 않았을까요? 혹은 둘 다 닮았거나?)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인지 '스트레스가 가중된 주변 상황+학창 시절의 질풍노도'가 합쳐져 사소한 말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게다가 오타 하나도 엄청난 실수가 되는 에디터의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점점 예민함 지수가 올라가는 듯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예민한 사람=피곤한 사람, 무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예민함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나쁘지만 아닌 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화를 내면 바로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최은영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 중 <고백>에 나오는 진희처럼 나는 무던하기 위해 기꺼이 나를 숨기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미주가 보기에 진희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겉으로는 오히려 둔감해 보였다. 자기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 예민한 사람이니까 너희가 조심해야 돼'라는 식이 아니라, 네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려고 했다.
지금은 화를 내지 않고도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설사 싸워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예민함은 나의 치부처럼 감춰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친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조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무던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화들짝 놀라며 "제가요?"라고 반응한다. 노력의 결과가 나타났으니 좋아해야 할 일일까?
바라던 대로 '무던한 사람'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는 예민한 사람인데 아니라고 하니 꼭 내가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을 연기하다 보니 나를 드러내는 일을 자제하게 되고 감정을 쌓아뒀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쌓아둔 감정이 폭발하니 오히려 정말 성격파탄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의 예민함을 어쩌지 못하고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기며 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의 예민함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작사가 김이나의 잡지 인터뷰를 읽으며 예민함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예민하다'라는 말은 원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데, 우리가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튀거나 무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잖아요. 보통과 다른 면을 짚어줄 수 있는 '예민한' 구석이 있다는 건 섬세하다는 장점이기도 한데 말이에요.
그렇다. 나는 섬세한 사람이다.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며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고,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 나의 예민한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동안 예민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감정의 볼륨을 낮췄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음량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다. 음소거가 아닌 나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가장 나다운 인생의 곡을 만드는 어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