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으로부터의 자유
내가 나를 인지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항상 완벽함을 갈망하며 살아왔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나의 인생은 마치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놓인 깨진 수박이나 뭉개진 생크림 케이크 같았다. 먹을 수는 있으나 이미 본래의 형태를 잃고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존재.
초등학교 때도 미술 시간에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가 망쳐 버렸을 때도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너무 보기 싫어서 찢어서 버리거나 다음 장으로 넘겨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 시간에 쫓겨 처음보다 더 완성도가 낮은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다. 그 상황도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여서 언젠가부터 미술시간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런 탓에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쉬웠다. 화목한 부모님과 함께하는 단란한 일상, 자상하고 따뜻한 오빠와 언니가 있는 집을 부러워했다. 그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 오늘 저녁은 가족들이 모여 돼지갈비를 구워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만 내일은 예기치 못한 불행 혹은 사건 등으로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과거의 불행은 이미 끝났다. 그럼에도 괴로운 것은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으며, 감정의 잔향이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불완전함에 좌절했고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그런데 완전무결함을 누가 정의 내릴 수 있으며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 줄까. 인생은 무결하지 않기에 오히려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교통사고로 몸이 다치는 불행을 겪은 사람이 퇴원 후 병원 정문 앞에 서서 느끼는 봄바람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결함이야말로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지어 주는 삶의 훈장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맹숭맹숭한 된장국에 약간의 고춧가루가 칼칼함과 감칠맛을 더하듯이 우리의 결함도 나만의 개성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이 결함투성이라고 해서 슬퍼하지 말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슬펐기에 지금의 삶이 애틋하고, 상처를 받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지금 그 어디에도 와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감추고 싶은 결함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웃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할 테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