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소우주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다 보니 평소와는 다른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생각을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계속 생각한다.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생각하다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으면 잠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며칠 전 깨달음을 얻었다.
내 인생이 힘들었던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봤다.
"왜 그(그녀)는 나에게 oo 했을까?"
"왜 그(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그녀)는 나에게 oo 하지 않았을까?"
분명 사람도, 발생했던 일도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체가 나라는 점이다. 당연하다. 이것은 내가 겪은 일이므로 나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다. 너무 내 입장에서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은 소수이므로 일반적인 경우를 예시로 삼겠다.) 그들의 행동에 악의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내 입장에서 피해자처럼 생각하지 않았던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당연하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기대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한 번도 나에게 "기대해 달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 마음대로 나에게 선의를 베풀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을 뿐이다. 혹은 그들의 안위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입장이며,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20대 초반 17일간 불교 수행을 할 때 스님이 나에게 "너는 너무 아상이 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알아듣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사회 경험이 부족했다. '오히려 아상이 크면 개성있고 더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응원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존재는 우주 안에서 작고 미약한 존재다. 거대한 우주에서 티끌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우리는 작지만 빛나는 소우주이며, 제각각 아름다운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나라는 형상에 고립되지 말고 무한한 세계에 함께 숨 쉬고 있다고 크게 생각하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나뭇잎이 되어 살아갈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물방울이 되고 싶다. 다른 물방울들과 만나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