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비우기 연습
지금은 좀 덜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기억력이 무척 좋은 아이였다.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나 있었던 일 등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기억해 주위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 말인즉슨 잊고 싶은 기억도 잊지 못하고 다 기억한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는 좋았던 기억보다 섭섭하고 고독한 감정이 들게 하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을 자양분 삼아 자랐다. 희한하게도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 사막의 모래 바람처럼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강풍의 모래바람이 되어 나를 덮친다. 너무 힘들면 사막에 누워 일어나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무기력한 마음으로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이를 먹으며 부정적인 일들을 더 많이 짐처럼 쌓아 올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 외에 기억할 것이 늘어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짐을 가득 실은 한 마리의 낙타처럼 내려놓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몸집을 키우더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짐이 무거워졌다. 급기야 작년에 나는 파업을 선언했다. 더 이상 이 짐을 싣고 나아갈 수 없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자처해야 하지?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형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이 짐을 싣고 걸으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짐을 내려놓을 줄 몰랐다. 그래서 바보처럼 끙끙대며 오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쓰레기통 비우듯 비우고 긍정의 기운을 새롭게 채워놓을 방법도 몰랐고,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감정의 짐을 얹은 채 고통의 사막을 걷고 나니 자유를 갈구하게 되었다.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에 초연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멀지 감치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왜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지 내적 대화를 나눈다.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이건 너의 과민반응이야'라고 조언을 건넨다. 그렇게 감정이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게 노력한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나이가 들었기에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사막의 낙타여, 주인이 아닌 자신을 위한 모험을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