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리 Feb 07. 2022

활자 디톡스를 결심하다

아기의 책장에서 얻은 깨달음   

 나는 활자 중독자다. 스마트폰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잠시라도 읽을거리가 없으면 허전했다.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땐 포장지 뒷면의 영양 성분 표시를 읽었다. 입시 공부를 하다가 쉬고 싶을 때면 신문이나 소설을 읽었다. 얇은 종이 앞뒤로 빼곡히 글자가 들어찬 신문은 매력적인 타임 킬링 아이템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내가 접한 활자는 대부분 무해했다. ‘의견’이 아닌 ‘정보’ 위주였고, 검증과 선별 작업을 거친 경우가 많았기 때인 것 같다. 간혹 격한 주장이 담긴 글들도 접했다. 그렇다 해도 상당히 정제된 표현을 썼다. 원색적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이름을 걸고 쓰인 글들은 대부분 그랬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되던 ‘닷컴열풍’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난 익명의 글은 거의 접하지 못했다. 종이의 세계가 더 흥미로운 컴맹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접하는 활자의 종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종이로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스마트폰, 노트북 화면 안에서 마주하는 활자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질도 천차만별이다. 크게 나누자면 세 부류다. 유익하거나-유익하지 않지만 무해하거나-극단적으로 유해하거나. 비중을 따지자면 ‘극단적으로 유해한 경우’가 압도적이다.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들, SNS에 떠도는 온갖 언어들.   


 나는 세상을 향해 쫑긋 귀를 세운 두 돌 아이의 엄마다. 다채로운 언어로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좋은 말, 아름답고 풍부한 어휘로 나를 채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좋은 단어’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릿속 사전의 두께가 형편없이 얇아졌다고 느꼈다. 반면 온라인에서 마주한 질 낮은 활자들은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쓴 기사에 달린 공격적 댓글들, 서로를 헐뜯는 정치인들의 SNS 피드…   


 이런 종류의 활자들은 다가가기 쉬웠다. 활자에 대한 허기가 엄습할 때, 는 해로운 언어들을 정크푸드처럼 흡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자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느낀 건 이때부터다. 관성적으로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보는 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취재 때문이 아니라면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멀리 하자는 다짐도 했다. 활자 중독자에게 활자 디톡스는 쉬운 일이 아니다. 허기를 억누르고 잠시 숨을 고르며 먼 곳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수련이 필요했다.    




 고약한 언어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것만큼 향기로운 활자를 가까이하는 것도 중요했다. 독소를 빼낸 만큼 양질의 영양보충이 필요하니까. 이건 의외의 대목에서 저절로 충족됐다. 아기의 책장에서다. 여기엔 어른의 세계에서 밀려나 있는 글자들이 가득했다. 평소 거의 쓰지 않지만 막상 입에 담으면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 말들. 민들레 싹, 구름빵, 두둥실, 달님, 구름 한 조각...... 수시로 나오는 ‘사랑해’라는 말. 


우리 집 아기 책장


 어린이집 가정통신문도 그렇다. 대체로 온순하고 차분한 말이 담겼다. 매주 부모에게 전하는 원장님의 메시지와 함께 떼쓰는 아이 달래는 법, 배변 교육법 등을 일러준다. 결론은 항상 비슷하다. 배려와 이해다. 모두가 중요성을 알지만 현실에선 쉽게 외면받는 개념들이 따뜻한 언어로 다가와 얼어있는 마음을 건드린다.   

 2월 가정통신문은 더 특별했다. 2월엔 졸업과 수료식이 있단다. 아직 ‘아기’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0~3세 아이들에게 ‘졸업’, ‘수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하루를 분투하듯 살아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통신문을 보는 순간 미안함과 대견함, 감사함이 북받쳐 올랐다. 이 마음을 알았는지 통신문에는 부모의 마음을 가만가만 어루만져주는 문장이 가득했다. 상당한 분량을 그대로 옮겨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로운 시작과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처음 겪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매일매일 느끼는 긴장감과 안타까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 달려온 열한 달을 뒤로하고 마지막 한 달인 2월은 잠시 멈추어 취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원에서는 남은 한 달 동안 우리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모습들을 회상하고 친구들, 선생님과의 추억을 마음속에 좀 더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헤어짐은 슬프고 아쉬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한 계단을 더 오를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집집마다 ‘좋은 생각’ ‘샘터’ 같은 월간지를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소한 생활 속 에피소드나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가 소박한 언어로 담겼던 것 같다. 지금은 병원이나 미용실에 가야 겨우 눈에 띄는 책자들. 그마저도 외면받기 십상이다. 대기 중인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으니. 슴슴한 언어로 쓰인 글보다는 ‘네이트 판’, ‘클리앙’에서 “~한 썰 푼다”로 시작하는 게시물을 접하는 게 더 쉽고 자극적인 건 사실이니까. 손 닿는 곳에 향기로운 언어가 풍부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활자를 만나려면 종이를 먼저 만져야 했던 시절 말이다. 수십 년 전을 그리워하는 걸 보니 ‘젊꼰(젊은 꼰대)’ 다 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더 열심히 디톡스를 하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아파트 마을의 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