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웃어주지 못한 날
달력에 뭘 끄적이길래 봤더니 본인, 친구의 생일날 케이크를 그려 놓았다. 소풍 가서 캐온 고구마 중 길쭉한 것을 집어 들고 허리춤에 대고선 “엄마, 나도 파우치 생겼다 헤헤” 하면서 개구지게 웃었다. 퇴근 뒤 아이와 둘이 함께 한 두어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이다.
이 천금 같은 순간들을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쳤다. 엄마의 반응을 바라는 아이의 기대 어린 눈빛에도 제대로 호응해주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일한 몸은 젖은 걸레처럼 기진맥진한데 이제부터 밥도 먹여야 하고, 씻겨야 하고......
그러다 아이가 자고 나니 귀여웠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왔다가 이내 심란해지는 것이다. 내가 놓친 순간이 얼마나 많을까. 엄마의 외면에 아이가 많이 속상하지 않았을까. 퇴근 후 내 아이에게 활짝 웃어주지도 못할 정도로 심신을 지치게 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요하는 이 일이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는가.
누가 봐도 아까운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보다 욕심과 열정이 그득해 보였던 여자들의 돌연한 퇴사를 난 이해할 수 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기에 더 힘들었겠구나. 모든 것에 진심이었기에 모든 것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