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결과가 나쁘면 꼰대질, 결과가 좋으면 멘토링
실패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 사람들은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긍정하고 싶어 한다. 실패적인 사건조차 긍정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쩌면 밀려오는 실망감을 외면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말이 나온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것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필요가 있기는 하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떠한 도전이든,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과정을 중시한다는 말에는 정도(正道)를 따른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바른 방법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종국에는 성공한다는 일종의 사회의 정의관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은 사람에게 동의받고 있고,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경우도 있다. 그중 하나가 조언이나 멘토링이다. 직장인이라면 후배나 하급자에게 조언하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반(半) 공식적인 '멘토링'이건 비공식적인 '오지랖'이건 간에, 그걸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체로 '꼰대질'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조언이나 멘토링은 후배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세태가 그러하다 보니 선배이건 상사이건, 진심으로 하는 자신의 개입이 꼰대질이 될까 봐 아무 말도 안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꼰대질이 아닌 합리적이고 실제로도 유용한 조언조차 듣는 사람이 기소한 '기분상해죄'에 걸려들면, 보지 않아도 될 불쾌한 태도를 답례로 받을 수도 있다(썩은 미소나 떨떠름한 표정 따위의...). 그래서 기성세대는 미움받을 용기보다 조언할 용기를 내기가 더 어렵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꼰대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편이다. '젊은 꼰대'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있어서 애매하니 '그냥 꼰대'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포지션이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지원(이라고 쓰고 잔소리라고 읽는...)하는 수석교사인지라 '진성 꼰대'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내 입장에서야 지원이지, 내게 조언이나 도움을 받는 2~30대 후배교사들의 입장에서는 꼰대질일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하는 꼰대질도 관심이 있지만 남이 하는 꼰대질도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이라는 것은 상대를 돕고자 시작한 조언과 지원, 정으로부터 나온 말들이 어떻게 꼰대질로 폄하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일단 큰 고민 없이 꼰대질로 판정할 수 있는 부류가 있다. 관심에서 시작하지만 그 안에 역지사지가 부족한 경우이다. 이런 조언은 대체로 자신의 문제일 때 보이는 진지함이 결여된 채 시작된다. 그 일이 자신의 문제라면 후배가 겪는 곤란한 상황(그게 업무건 인간관계이건)을 단순한 문제로 규정하지 않을 텐데, 어떤 선배들은 후배의 어려움에 대해 너무나 단순한 요인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한다.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도 상황이나 후배의 처지,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조언은 실상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난 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돕는다고는 하지만, 후배한테 내가 이 정도 말을 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우선인 데다, 그런 행동을 통해 관계 상의 우위(또는 우월감)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고 있다(가스라이팅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래서 후배가 겪는 어려움의 복잡한 정황은 파악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너무나도 빠르고,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하는 조언은 대개 꼰대질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진심으로 후배를 돕고자 하고 정성을 쏟음에도 결국에는 꼰대질로 폄하되는 경우가 있다. 결과가 나쁜 경우 그러하다. 요즘 젊은 세대가 계산적이라고들 하는데, 열심히 선배말을 듣는데 시간을 사용하였음에도 도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나쁜 것'이다. 많은 경우의 진심 어린 조언이나 멘토링이 꼰대질로 끝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결과가 나쁠까? 한 가지 이유는 후배에게 조언하기에 경험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선배가 후배의 문제와 관련된 경험이 부족하면 당연히 원인의 진단이 틀리고 처방도 부적절하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잘 모르면 함부로 조언이나 멘토링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험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려움에 공감을 해주고 그 문제 이외에 마음을 달래주든 자질구레한 업무를 대신해 주든 도울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봐야지, 경솔하게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안 된다. 어설픈 조언은 함께 속상해하면서 커피 한 잔 내려주는 것만 못하다.
진정성과 무관하게 결과가 나쁜 또 다른 이유는 후배가 결과에 이를 때까지 관심과 노력을 지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배가 그 자리에서 아무리 상황을 상세하게 듣고자 노력해도 상황은 계속 달라지며, 그 자리에서 후배가 미쳐 이야기 못한 속사정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잘못된 원인 파악과 적절하지 않은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후배 자신이 원하는 걸 제대로 모를 수도 있고, 후배가 이야기한 것과 선배가 이해한 것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후배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도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다들 바쁘기 때문이다(후배도 바쁘고 선배도 바쁘다). 대부분의 조언, 특히 업무상의 조언은 과정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일회적으로 끝난다. 인수인계하듯 한 번 전달하고 끝나는 조언이나 멘토링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거기에다 조언이나 멘토링을 한 한 참 후에 후배의 실패를 보고 혀를 끌끌 찰뿐, 후속 조치까지 없다면 꼰대질이 확정된다. 처음의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좋은 조언이나 멘토링은 결과가 좋은 것이다. 멘토링이나 조언은 대체로 과정이 나쁘다. 특히 후배가 먼저 도움을 청하기 전에 업무로써 하는 멘토링이나 선배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조언의 경우 더욱 나쁘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식적인 업무로 하든, 자발적으로 하든 조언이나 멘토링은 그걸 받는 사람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믿는데 선배나 상사가 뭔가 잘못을 지적한다고 생각해 보자. 선배의 진정성과 관계없이 후배는 기분 나빠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조언이나 멘토링은 과정이 좋을 수가 없다.
선제적인 조언이나 멘토링은 태생적으로 과정이 나쁘니 결과는 반드시 좋아야 한다. 눈에 띄는 업무상의 성과가 있다면 과정이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후배들은 대체로 만족한다. 그러나 성과가 없더라도 결과가 좋을 수 있다. 후배가 스스로 뭔가를 배웠고 자신이 달라졌음을 느끼면 결과가 좋다고 할 수 있다. 링에서 상대를 이겨 트로피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판정패를 했건 KO로 누워 있건 간에 선수가 후회 없는 승부를 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조언이나 멘토링을 받은 후배가 자신의 '결과'에 대해 만족하면 그 조언이나 멘토링은 성공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선배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 마치 코치나 세컨드들이 링의 입장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 곁을 지키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에서 선배교사가 후배교사에게 하는 조언도 마찬가지다. 많은 선배 혹은 관리자의 조언이 뉴비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거나 그들이 고마움과 유용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결과까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수업 코칭을 하는데 저경력 교사가 의욕이 없거나 경황이 없어 수업 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이후의 일을 확인하지 않고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정성스러웠건 그다지 유용한 경험으로 남기 어려울 것이다(수많은 장학이나 수업컨설팅이 특히 그러하다). 또, 뜬 구름 잡는 듯한 애매하고 원론적인 설명을 할 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함께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도와주려고 한다면 끝을 봐야 한다. 그 끝은 반드시 '함께' 봐야 한다. 고귀하신 선배님께서 원리를 가르쳐줄 터이니 그걸로 업무에 구체화해 보는 건 미천한 후배 네 놈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멘토링이나 조언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현장 경험이 없는 교수나 실무를 떠난 관리자들이 실무자들에게 하는 조언 중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 아마 꼰대질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가 나쁘면 꼰대질, 결과가 좋으면 멘토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