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Seoul
23살 때가 생각난다. 여행자금이랑 학비 벌겠다고 공장을 다녔다. 잠깐이지만 야간도 했다. 20시에 출근해서 8시에 퇴근했다. 새벽 두 시쯤에 밥을 먹었다. 야식이라는 이름값 못하게 드럽게 맛없었다. 성격 드러운 조장 때문에 입 밖으로 욕 튀어나올까 입단속하느라, 팔은 바쁜데 입은 무거웠다. 어깨는 뭉쳐서 감각도 없었다. 밤낮을 강제로 바꾸는 건 사람을 살살 말려 죽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거기서 만난 이모 이야기가 재밌어서다.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잠깐 일하고 번 돈으로 인도에 간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 다녀왔더라. 남쪽도, 동쪽도 갔다 와서 이번엔 서쪽으로 간다고 했나. 어쩐지 범상치 않은 아우라는 K에선 만들어질 수 없는 무언가였다. 한 번 가면 몇 달 동안 머문다고 했다. 소랑 같이 바다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몇 주간 네팔에서 트레킹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심장이 쿵쿵댔다. ‘내가 원했던 게 이거잖아. 나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이것은 휴학하고 얻은 최고의 깨달음이다. 책상에 앉아 몰래 핸드폰 하며 듣는 박사님들의 수업보다 일상에서 만난 어떤 이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배움이 있다는 것. 딱 그 시점에 Humans of Seoul에 합류했다. 공식적으로 타인의 이야기를─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싶은─깊은 곳에 있던 기나긴 시간을 듣는다. 어떤 문장은 무기력한 나를 일으키기도, 어떤 한 마디는 질문 투성이인 삶의 명쾌한 대답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결혼을 앞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나는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마음을 쿵쿵 때리는 많은 이야기. 그것들엔 유통기한이 없어 마음 한 켠에 스며 오래도록 남아있다.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HoS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능하다면 국적도 아무런 상관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수십 명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은 거대한 전기와 같은 노인의 인생이, 동화책 같은 어린아이의 시간이 나에게 현재가 되는 일이다. 그렇게 타인의 시간을 내 삶에 편입해 토닥이며 쌓아갔다. 그러면 좀 더 커진 내가 된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갑자기 벅차오른 이유는… 정기회의를 끝내고 예전 인터뷰를 하나하나 읽게 되어서다. 나의 친구들도 시간이 난다면 HoS 첫 게시물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도 있지만 페이스북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시기에 더 뭉클했던 건 코로나 이전의 서울이 너무나 싱그럽게 담겨있기 때문도 있다.
하나하나 보다 보면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이 비죽 올라온다. 그게 어떤 이름을 가진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더 따듯한 세상을 상상케 하는 건 확실할 터. 세상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이야기를 진득하게 듣고 기록하는 마음과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