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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Sep 03. 2024

프롤로그

그늘과 그림자

"정 규식 실장님이 기획실로 데려가겠다는 걸 내가 얼마나 버텼는지 알아요!. 힘들었어요. 권지상 차장까지 나서는 바람에. 도대체 그 양반들이 송안에서 민대리에게 얼마나 신세를 진거야. 하여간 그쪽으로 가는 줄 알고 송안점에서 놔 준걸 내가 하이재킹 해온 거니까 즐겁게 일하고 내년에 꼭 승진하자고요.

그때 기획실로 데려가든지, 어쨌든 1년 동안 내가 시골 물 쫙 빼놓겠다고 했어요."

"팀장님. 시골물이라니요. 저 서울에서 10년 산 사람입니다."

"그래요. 서울 사람. 미리 귀띔해 주었으니 숙소는 구했겠죠."

"일단 전에 살던 동네에 원룸 하나 구했습니다. 시세가 그대로라서 쉽게 해결했습니다."

"그럼 주말에 이사하고 월요일부터 빡세게 일합시다."


  목요일, 드디어 인사 명령이 떴다. 금요일 아침 본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권새록 팀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업무 오리엔테이션과 본사 모든 사무실로 임원부터 사원까지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사하게 했다. 그동안 무슨 고민을 했는지도 기억할 틈 없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 본사, vip, 마케팅, 지하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독신 생활. 모든 것을 즐겁게 맞기로 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시작했다.    




   "그러게 우리 오피스텔로 가자니까요. 거기가 회사도 가깝고 보안도 좋은데... "

   마침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며 태워다 주겠다고 따라온 김 세안이 굳이 집까지 따라 들어왔다. 주차장이 협소하다며 투덜대기 시작한 그는 공동 현관 비밀 번호를 묻고 주소와 함께 메모했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낡았다고 걱정하고, 세탁기와 에어컨도 불만, 신발장 크기까지 트집 했다.

  

  "왜 따라와서 괴롭히는 겁니까. 회사 일로 오셨다면서 일 보러 안 가세요."

  "주말에 무슨 일. 업무는 월요일부터인데 미리 온 것이니 그리알고. 대충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아니지 그래도 이사하는 날이니까 역시 짜장면 시켜 먹여야 하나."

  "부사장님. 아니 세안이 형 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위치 알고 둘러보셨으면......"

  "내가 같이 온다고 하니까 강여사님이 신신 당부하셨어요. 꼼꼼하게 살피고 오라고."

  "물론 고맙습니다만 저도 월요부터 출근하려면 준비할 게 많습니다."

  "그럼 배달이 낳겠군. 외식하는 것보단. 밥 먹고 한강에나 갑시다. 산책로 점검도 할 겸."


  강여사는 물가에 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성원의 사주에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이 보이는 곳에 살아야 보완할 수 있다 말했다. 그래서 호숫가에 집을 지었고, 바닷가에 커피하우스를 열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 처음 자취집을 얻을 때도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한강변을 찾았다. 그래서 여의도와 마포를 고민하다 지금의 동네에 정착했다. 그래서 이번엔 고민 없이 이 동네로 돌아왔다. 한강 산책로는 뻔히 알고 있는데 거기까지 점검해야 한다는 김 세안을 바라보며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의아했다. 만날 때마다 평범해지는 사람이었다.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던 날의 신비감과 낯섦으로부터 자상한 익숙함으로 진화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길을 사람들이 걷는다. 한강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밤섬이 보이고 여의도의 야경이 휘황하게 펼쳐진 곳. 거기서 맥주 캔을 따는 순간 황홀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두고 간 것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버리고 도망간 것들을 다시 대면할 수 있을까.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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