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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Oct 23. 2024

피라미드

여름에 읽고 쓰고 둔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

『피라미드』 /윌리엄 골딩/안지현 옮김/ 민음사 / 2020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서울 강남 지역에 들어설 주상 복합 아파트 광고문이었다. 안 좋은 여론에 시행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분양 실적도 신통치 않지만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이다.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자신들의 피라미드 위에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 광고에서 진짜 기분 나쁜 부분은 ‘바칩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다.

광고를 만든 카피라이터나 이를 승인한 광고주 모두 자신의 존재를 한 없이 낮춘다. 부자 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하위 계층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른바 명품 아파트를 지어 특정 계층에게만 파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권한다’ 거나 ‘제공한다’가 맞다. 조금 양보해도 ‘드립니다.’ 정도로 마무리했어야 한다. 

그것이 피라미드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성공한 사람의 회고

  『파리 대왕』으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는 자전적 소설이다. 대부분의 고전 작품이 작가의 경험과 세계관을 투영하는 것처럼 이 작품 또한 골딩 자신의 성장 배경을 그대로 녹여낸다.       

   가상의 작은 마을 스틸본 주민들의 생활 속에 얽힌 관계를 조망한다. 어른들의 직업과 사는 지역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을 정하고 그러한 구조 안에서 다시 자기 역할과 분수를 아는 생활을 한다.

작품에는 주인공 ‘올리’가 겪은 세 가지 사건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옥스퍼드 진학을 앞두고 마을 처녀를 정복한 이야기, 마을 사람들의 정기 오페라 공연, 그리고 후일담처럼 담긴 ‘바운스’ 여사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그냥 어느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영국 사회의 계급 구조(피라미드)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마을 오페라의 배역조차도 철저히 계급에 의해 결정되고, 커뮤니티의 질서를 어기고 상위 계급과 스캔들을 만든 서민 출신의 팜므파탈은 추방한다. 그러한 사다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부를 축적한 정비사마저도 겉으로는 ‘도련님’‘마님’ 같은 호칭을 유지하며 마을의 위계질서를 전복할 뜻이 없음을 보여야 한다. 비록 마을의 물리적인 지형과 건물은 변하더라도 전통이라고 포장된 피라미드 구조는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어느 정도 성공한 중년이 되어 돌아온 주인공 ‘올리’는 피아노 선생이었던 바운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다. 재능은 있으나 기댈 곳 없던 청년 정비사 헨리를 지원하고 모든 것을 내주었던 그녀가 비참하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들으면서도 그 자리를 떠날 생각만 한다. 그냥 그렇게 되었구나. 모든 일들이 올리에게는 지난 시절의 불편한 기억일 뿐.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듯 훌륭하다 칭찬받은 차를 타고 다시 떠난다.      


흔들리지 않는 피라미드

    윌리엄 골딩이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계급 문제, 피라미드 구조를 건드린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영국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병폐라는 문제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 아들에게 좀 더 좋은 배역을 주기 위해 트러블을 만들지만, 주변 이웃들의 스캔들을 전파하고 바운스의 불행을 비웃는 올리 엄마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중간 계급의 모습이다.


    올리가 살던 스틸본의 모습은 10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서울에서 더욱 강화된다.

사는 동네가 계급을 규정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꿈꾼다. 물질 만능주의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상한 포장으로 그 천박함을 가리고 있다. 불평등과 교양 없음을 효율과 공정이라는 단어로 오염시킨다. 유머도 여유도 없이 자신의 울타리 치기에 급급 할 뿐이다.

   

   앞 세대의 희생으로 부유해진 지금의 부모들은 그것을 다음 세대에 대물림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공직 후보자의 프로필에는 자랑스럽게 누구의 아들이란 것이 따라붙고, 그런 (재력과 힘이 있는) 사람끼리 모여 살자는데 누가 감히 말리겠느냐. 자본과 권력으로 견고한 피라미드를 축성한다. 중간에서 피라미드를 오르고 있는 ‘올리’나 ‘헨리’ 같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비겁해지라고 요구한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자기가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기 아이들만  위에서 안전하게 살기를 원한다. 더 높은 자리를 향해 가라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닦달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냥 중간 계급으로서 온라인 댓글로 분노하고 누군가의 스캔들을 관음 하며 힐난할 뿐이다.     

 윌리암 골딩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답을 내지 못했다. 주인공 올리는 주유기 앞 낡은 보도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만약 내 소리내 살과 피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내 힘을 그 보이지 않는 발에 맡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헨리와 마찬가지로 내가 적정한 대가 이상을 치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골딩은 그것이 영국 사회의 오래된 병폐라 말하지만 우리에겐 미래를 잡아먹는 골칫덩이다. 

 『파리 대왕』에 비해 덜 알려진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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