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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Oct 23. 2024

위대한 개츠비

가을에 읽고 쓰고 둔다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백지민 옮김/ 반니 / 2020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는 남자

   영국의 소년들이 계급 피라미드 안에서 갈등(윌리엄 골딩, 『피라미드』)할 때 대서양 건너 신대륙에는 거침없이 피라미드를 오르는 청춘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거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향해 자신을 단련하던 청년은 운명적으로 한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삶의 목표를 수정해야 했다.


  데이지를 처음 본 날의 개츠비는 그의 인생 항로가 바뀐 것을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멋진’ 여자. 마음이 두근거릴 정도로 욕심나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부잣집에 살고 많은 남자의 구애를 받는 그녀는 볼수록 가치가 더해졌다. 비록 내세울 경력 하나 없는 무일푼 청년이었지만 그녀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목적을 위해 거짓으로 자신의 신분을 포장하고 화려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과장하며 접근해서 차지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말했던 것들이 사실임을 증명하러 돌아왔다.     


가진 것은 무조건 지키려는 남자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모든 것을 가졌다. 태어나 보니 집이 부자였고, 피지컬도 좋아 운동 능력도 탁월했다. 20대 초반에 인생의 정점을 찍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돈 쓰는 일로 소일한다.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의 아내가 있지만 가는 곳마다 바람을 피운다. 느닷없이 등장해 도전하는 개츠비라는 작자의

과거 행적을 폭로하여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데이지를 혼란에 빠뜨린 놈을 응징하고 데이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윤리 도덕 같은 것은 없다. 살인의 원인은 전적으로 개츠비에게 있다.       


그리고 관찰하는 남자

  그해 여름의 사건들을 회고하며 기록하는 닉 캐러웨이가 있다. 

가문 이름만으로도 집을 찾을 수 있는 중서부 명문가 출신으로 데이지와는 친척이고 톰의 예일대 동문이다. 스스로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뉴욕에 왔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신중해지라는 아버지의 교훈을 새기며 글 쓰는 재주를 살려  “균형 잡힌 인간” 되고자 한다.     


슬픈 사랑의 기록

  닉과 같은 집안 출신인 데이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는 여자였다. 루이 빌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장교와의 불같은 사랑이 끝났을 때, 영리한 그녀는 가문의 수준에 맞는 시키고 출신의 한량과 결혼했다. 사람들을 함부로 부리며 외도를 일삼는 결혼 생활이지만 데이지의 화려함과 자신감의 뒷배경이 되어 줄 ‘돈’이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다.


  5년 만에 나타난 개츠비의 낭만적 태도와 엄청난 재력에 혹했다. 옛날 감정도 살아나고 이 정도 능력자라면 새 출발을 고려했지만, 톰의 폭로에 그 마음을 접었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게 창피하고 혼란스러웠다. 교통사고를 내고 숨어야 했다. 개츠비 저택의 살인과 쓸쓸한 장례식에 데이지는 관심 없다.     

  

  그렇게 끝났다. 개츠비는 어두운 해변에서 먼 곳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남자로 돌아갔다.     

개츠비가 먼 여정 끝에 이곳에 도착하여 데이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가졌던 기대를 기억한다. 과거로부터 나와서 꿈을 이루기 직전, 그의 생에 가장 희망적인 순간에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걸 몰랐을까.     

                 

                         “그렇게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가면서도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억되는 남자의 사랑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독자들은 그래서 뭐가 위대한 건데 하며 시비를 건다. 또는 작가의 인생과 시대 배경, 무너진 아메리칸드림을 논한다. 사랑을 되찾기 위해 불굴의 노력으로 돈을 벌고 매일 밤 엄청난 파티를 벌였던 남자.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남자.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려먹고 영화로 드라마로 변주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또 추천하고 또 읽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옆집 잔디를 깎아야 하는 이유, 노란 자동차의 초록빛 시트, 데이지가 좋아했던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는 개츠비의 눈빛과 그때마다 떨리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며 따라가는 그녀의 목소리. 그들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벌어지는 묘한 기대를 읽어야 한다. 그의 사랑을 무시하는 시대의 허영심과 그의 순수를 응원하는 닉의 성장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꿈을 이루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균형 잡힌 독자”들은 그 녀석의 맹목적 돌진에 경의를 표한다.           



※나탈리 포트만의 미스 디올 광고에서 젊은 날의 데이지를 떠올랐다. 그래서 제목을 그대로 잡았다.

https://youtu.be/HscvYfeI314?si=FhSXP09yNA5NXQ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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