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토리텔링 by 권보연 신진주
스토리텔링은 형식과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뉴스 스토리텔링을 창안한다는 것은 의도된 설계, 즉 ‘디자인’ 개념에 바탕하는 행위로 인식되어야 한다. 뉴스 스토리를 디자인할 때, 제작진이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설계 요소가 초점화(Focalization)이다. 서사학에서 초점화는 의식, 목소리, 시야를 의도적으로 제약해 특정 인물과 그/그녀의 행동을 부각해 수용자에게 강한 집중을 발생시키는 효과로서 강조되는 이론이다.
제라드 주네트Gérard Genette)와 리몬 케넌(Rimmon Kenan)은 초점화의 이론 정립에 기여한 서사 학자들이다. 주네트는 초점화를 등장인물에 대한 서술자의 지식, 정보, 이해 수준에 따라 구분한다. 리몬 케넌는 주네트 이론을 생산적으로 비판하면서, 복잡하게 느껴지는 초점화 이론은 서술자와 초점자를 별개 존재로 인식하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케넌은 서술자 위치가 스토리의 안과 밖 중 어디인지, 서술자가 단순한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는지 아니면 전지적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존재인지에 따라 초점화 유형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두 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점화는 이질적 분류 기준이 유사 용어 속에 혼재되어 있고, 픽션 소설을 고려한 이론 발전의 배경 때문에 실제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취재와 보도 현장에 직접 적용하는 것에는 혼란이 따랐다. 이에 논픽션을 디자인하는 뉴스 제작진이 초점화를 보다 간명히 구분해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재정리해 새로 제안한다.
① 주관적 초점화 : 뉴스 스토리텔링에서 서술자가 뉴스 속 등장인물의 내면에 위치해 개인적 견해를 전하는 방식이다. 주관적 초점화는 이론상, 등장인물의 감정에 수용자를 가깝게 이입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토리 대상이 논픽션에 속하며,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보도라면 개인 견해를 그대로 드러내는 선택은 신중해야만 한다. 특히 보수적 언론 시스템에서는 사실 관계, 복합적 진실에 대한 왜곡 우려로 주관적 초점화 사용을 금기시한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보자가 1인칭 서술자로서 사건을 전달하면서, 의미를 임의로 판단한다면 사실 확인 소홀,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 해석 오류 같은 여러 부작용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② 참여 관찰적 초점화: 서술자는 스토리 내부에 위치한 등장인물 중 한 명이며 사건 당사자들과 모종의 관련을 맺고 있다. 등장인물로서 서술자는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이 되어 그/그녀가 목격하고 경험한 바를 전하는데 힘을 쏟는다. 이때, 서술자 역할은 해설자나 전지적 존재가 아닌, 객관적 관찰자 위치를 지킨다. 잠입 취재, 체험 보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구조이며, 참여 관찰적 초점 화가 적용된 뉴스에서 기자, PD, 작가는 스토리에 포함된 존재지만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며 서술할 수 있다. 이 특성 때문에, 서술자가 사건에 포함된 인물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초점화와 달리, 참여 관찰적 초점화는 뉴스 스토리텔링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③ 카메라 초점화: 서술자가 사건 외부에 위치한 카메라 렌즈 시선으로 뉴스 속 등장인물을 관찰하고, 현장 상황과 분위기를 전하는 방식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보도하는 앵커나 기자 리포팅 대부분은 카메라 초점화를 사용해왔다. 사건에 휘말린 등장인물, 사건 현장과 상황을 추후 취재하는 사람, 이를 보도하는 서술자가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뉴스 스토리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각 단계를 기록, 복기하는 방식으로 사건 당자사의 상황과 감정을 수용자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④ 집단 해석적 초점화: 서술자가 사건 외부에 위치하며, 여러 관찰자와 취재진을 대표해 객관적 정보만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심층적 의미 판단과 해석을 보태고 있다면 집단 해석적 초점화로 간주한다. 제작 팀 전체의 판단과 견해에 따라 뉴스를 전하는 시사 토크쇼나 심층 취재 보도에서 서술자 역할은 집단 해석적 초점화를 반영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뉴스 스토리는 사건의 당사자는 아닐 지라도 취재 과정 속에서 특정한 견해와 입장을 획득한 서술 그룹 고유의 초점을 갖게 된다. 집단 해석적 초점화는 서술자와 서술자 그룹의 지식과 검증, 통찰, 끈질긴 취재에 근거한 등장인물과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물이다.
⑤ 전지적 초점화: 서술자는 사건 당사자 거나, 사건 발생과 상황에 깊이 연루되어 초월적 지위를 획득한 인물이다. 전지적 초점화의 핵심은 서술자의 위치가 아니라, 서술자가 관찰자와 모든 등장인물들 대비 압도적 정보량과 해석력으로 사건의 전모와 실체를 꿰뚫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소설이라면 창작자가 픽션 세계를 완벽히 통제하기 때문에 전지적 시점 활용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실제 발생한 사건을 특정 서술자가 오류 없이 해석하는 것은 서술자가 사건을 임의 조작할 수 있다는 가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특정 뉴스가 전지적 초점화를 사용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듯 보인다면, 이는 주관적 초점화의 오인이거나 제작진이 사건을 마치 픽션처럼 의도적으로 과해석하는 상황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는 문성근, 박상원, 정진영에 이어 김상중까지 중년의 남성 배우를 진행자로 기용해왔다. <그알> 진행자는 사건의 서술자이며 그가 뉴스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극적 비중은 절대적이다. 1992년 첫 방송 당시, 프로그램 제목에 서술자의 이름이 포함될 정도였고 스튜디오는 배우를 위한 연극 무대로 디자인되었다.
<그알> 진행자들은 사건 당사자나 직접적 취재진에 속한 인물이 아니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여 범인과 진실을 규명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처럼 전체 뉴스 스토리 내에서 제작진의 취재 과정을 전달하는 핵심 캐릭터를 연기한다. 진행자 김상중은 드라마와 영화 필모그래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알>을 통해 강한 추적자, 수사관 캐릭터를 구축해 시청자들에게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알>은 어떤 초점화 유형을 채택하고 있을까.
중년 탐정 캐릭터가 구축되고 사건 현장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술자 김상중은 스토리 밖에 존재한 인물이다. 진행자가 사건 재연 장면에 등장하는 경우에도 당사자는 진행자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존재를 인식했더라도 진행자는 등장인물을 관찰할 뿐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알> 진행자는 사건의 정보만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니라, 취재 과정의 경험과 목격을 통해 사건의 진실과 의미를 판단하는 존재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이 김상중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제작진을 대표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알>의 취재 과정은 사건 정보를 직접 수집하는 1단계와 이를 분야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분석, 검증하는 2차 취재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그알> 제작진은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고 스토리텔링의 중심 화두를 결정한다. 김상중의 멘트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압축한 것이다.
그러나 비중 있는 사건 해석자 역할에도 불구하고 진행자 김상중은 명탐정을 연기하는 배우 역할에 충실할 뿐, 저널리스트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로 서술하는 스토리에서 김상중은 자신을 가리키는 주어로 ‘나’를 사용하지 않고 제작진 전체를 지칭하는 ‘우리’를 선택한다. <그알>의 명탐정 김상중은 진행자로서 사건의 전모와 진실을 서술한다. 그는 관찰자이며, 그의 해설과 판단은 개인의 것이 아닌, 제작진 전체의 것이다.
<뉴스룸>은 백화점식 보도와 기계적 전달에 익숙해진 뉴스 스토리텔링에 ‘손석희 저널리즘’ 신드롬을 일으키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손석희 앵커는 뉴스 스토리 외부에 위치한 움직임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사안에 따라 스토리 안팎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뉴스룸>은 100초 내외의 기자 리포팅 VCR과 현장 연결, 스튜디오로의 인물 초대 인터뷰, 앵커 브리핑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기자가 서술을 맡은 리포팅은 관습적 뉴스 채널의 보도 형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손 앵커 주도의 코너들은 그를 뉴스 스토리에 포함된 등장인물로 재배치하고, 때로 그의 주관적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차별적 구성으로 전환된다.
손 앵커는 기자의 준비 여부를 떠나 시청자가 궁금한 내용이라 판단하면 즉시 질문한다. 이때 기자가 답하지 못하면 추가 취재를 요청해 방송 중 재연결하거나 다음 날 다시 보도가 이어지도록 조치한다. 스튜디오 초대 인물 인터뷰도 손 앵커 주도의 진행에 힘이 실린다. 그는 사전 작성된 대본에만 의지하지 않고 대화 중 허점이 발견되면 유명인, 고위 인사에게도 원고에 없는 질문을 추가한다. 앵커 브리핑은 여기에서 더 나아갔다. 손석희 앵커의 개인 경험과 생각에 바탕 한 에세이 형식의 마무리 브리핑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를, 그가 이야기하는 사건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인식시키곤 한다. 평소 ‘저희는’, ‘JTBC는’, ‘뉴스룸은’ 같은 집단 해석적 초점화를 적용하지만, 오보 정정이나 제작진 사과가 필요한 경우, 1인칭 주어 ‘저는’을 선택하여 방송사 사장으로서의 자기 책임과 판단을 부각한다. 초점화 형식을 스토리 전략에 따라 변경하고 있는 것이다.
손석희식 주관적 초점화는 <뉴스룸>의 신뢰도와 개성 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인칭 화법을 통한 뉴스 스토리 내부 침투는 시청자가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손 앵커의 강력한 캐릭터와 언론사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전제할 때 가능한 시도기도 하다. 손 앵커는 집단 해석적, 주관적 초점화를 전략적으로 변경하면서 뉴스 스토리의 전달력과 수용도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김어준 공장장의 뉴스 스토리텔링 전략은 서술자의 흥미로운 이력과 연결되어 있다. 김 공장장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대기업을 곧 그만두고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뒤 창업했지만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그가 <딴지 일보>를 창간하며 언론에 입문한 것은 사업 실패 이후 시점으로, 김 공장장은 통상적인 전문 언론인의 업계 인문과는 차별적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비속어를 섞어 쓰는 특유의 대중 화법으로 기성 언론과 권력을 비판하며 명성을 쌓고, CBS 라디오 방송으로 활동 분야를 넓혔다. 이어 2011년 ‘이명박 대통령 가카 헌정 방송’이라는 도발적 개념의 팟 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폭발적 팬덤을 확보하고, TBS 라디오 <뉴스 공장>, SBS TV <블랙하우스>를 통해 중앙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주류 언론에 복무하는 진행자가 되는 대신, 반항적 캐릭터를 활용해 이슈 중심 시사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김어준 캐릭터는 관찰자, 메신저가 아니라 스토리에 침투한 중심인물로 역할하는 것이 특징이다. <딴지일보> 총수, <블랙하우스> 흑와대 주인장, <뉴스 공장> 공장장의 공통점은 수용자에게 그를 시사 프로그램의 기능적 호스트가 아니라 극적 상황에 개입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인식시킨다는 것이다.
김 공장장은 프로그램에 초대된 전문가와 유명인 인터뷰에서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논쟁을 즐기는 공격적 평론가이다. 예컨대, 그는 2012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관련 집회를 홍보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사건을 일으켜 스스로 이슈 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오히려 김 공장장을 자신이 다루려는 정치적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외압과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이 기득권 세력과 대치한 이력은 투사적 캐릭터의 성장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청취자들이 <뉴스 공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객관성, 신뢰감보다는 공장장이 쏟아내는 주관적 해설에 통쾌함 또는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뉴스 공장>은 서술자의 주인공화를 시도한다. 이 경우, 수용자가 강한 개성의 서술자에 동화된다면 열정적 팬이 되지만, 반대로 강한 적대 세력이 될 위험도 높다. 개인 성향 노출에 관대하고 진보 성향이 뚜렷한 인터넷 언론 출신 김 공장장은 보수적 저널리즘에서는 뉴스 스토리에 적용을 꺼리는 주관적, 전지적 초점화를 전략으로 채택해 ‘해적 저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개척했다.
과감한 자기 노출과 전지적 초점화는 전통적 언론사 외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역할 모델이 되고, 전략적 스토리텔링 구조로서 모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사와 새로운 세력을 변별하는 개성으로 인식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지평 안에서 뉴스 스토리텔링을 지속하려면 정통 언론사와 소셜 미디어의 제작진을 구분하지 않고, 선택한 초점화의 장단점을 파악해 신뢰와 책임을 다하는 보도 태도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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